여자가 되고 싶었던 '천재 씨름 소년'
[양형석 기자]
199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면 친구들을 배신하고 거액의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다른 대학에 진학한 이동민(손지창 분)이 학교 선배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받는다. 이동민의 입학과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선배들은 이동민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데 이 과정에서 심하다 싶을 정도의 폭력과 가혹행위가 등장한다(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는 이동민의 승부욕을 끌어 올리기 위한 감독의 지시도 있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운동부의 폭력문제는 비단 영화나 드라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일부 운동부에서 후배들을 향한 폭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 <천하장사 마돈나>는 흥행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
ⓒ CJ ENM |
7개 영화제 신인상 휩쓴 청소년배우
5살이던 1992년, 뮤지컬 제작자였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뽀뽀뽀>에 출연하며 이른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한 류덕환은 <베스트극장>과 <테마게임> 같은 단막극을 통해 연기경험을 쌓았다. 1996년에는 <전원일기>에 출연했고 <왕초>와 <허준> 같은 대작(?)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장진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내 나이키>에서 나이키 운동화에 집착을 보이는 소년 역을 맡았다.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의 동생을 연기한 류덕환이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2005년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웰컴 투 동막골>의 감독은 <내 나이키>를 연출했던 박배종 감독이다). 류덕환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남한이 북침을 했다고 굳게 믿었던 북한군 소년병 서택기를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자세히 표현되진 않지만 강혜정이 연기한 여일과는 약간의 러브라인도 있었다.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충무로에서 주목하는 10대 배우가 된 류덕환은 2006년 이해영, 이해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상업 영화의 단독주연에 발탁됐다.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해 씨름을 시작하는 소년 오동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실제로 류덕환은 육중한 몸매의 동구 역을 소화하기 위해 몸무게를 30kg이나 불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을 비롯해 무려 국내외 8개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며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상승세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류덕환은 2007년 범죄 스릴러 영화 <우리 동네>와 휴먼 드라마 <아들>에 출연했지만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나마 2009년에 개봉해 191만 관객을 동원한 <그림자 살인>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선전했다.
하지만 류덕환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개의 시즌이 제작된 메디컬 범죄 수사극 <신의 퀴즈> 시리즈에서 IQ 183을 자랑하는 법의관사무소의 촉탁의 한진우를 연기하면서 드디어 대표작을 만났다. 이후 <미스 함무라비>와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아무도 모른다>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영역을 넓히고 있는 류덕환은 지난 2021년 의류 쇼핑몰 모델 겸 CEO 전수린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 호리호리한 체격의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역을 위해 무려 30kg을 증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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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를 공동 연출한 이해영 감독과 이해준 감독은 모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해영 감독과 이해준 감독은 감독 데뷔 전 <신라의 달밤>과 <품행제로>,<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 각본작업에 함께 참여했고 연출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의 각본 역시 두 감독이 함께 썼다.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청룡영화상 각본상과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후 현재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한 소년이 성전환수술을 받기 위한 장학금을 벌기 위해 씨름을 시작하는 내용의 코믹 드라마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성별정체성을 다룬 상업영화는 흔치 않다. 하지만 <천하장사 마돈나>는 자칫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성별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씨름이라는 친근한 소재와 접목시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풀어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맨몸으로 모래판에서 상대를 넘어트리는 스포츠 씨름에 소질이 있다'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의 영화다. 실제로 동구(류덕환 분)는 연습과정에서 주장 박준우(고 이언 분)를 제외한 선배들의 기술이 전혀 먹히지 않을 정도로 씨름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구는 기본적으로 씨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그저 장학금을 벌기 위한 목적 때문에 씨름을 시작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씨름영화이자 성별정체성을 다룬 영화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권투선수 출신 노동자인 동구의 아버지(김윤석 분)는 폭력을 쓰는 한이 있어도 여자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동구는 치마를 입고 아버지의 일터에 찾아갈 정도로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결국 아버지는 동구의 경기장에 찾아와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응원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이해영과 이해준이라는 좋은 감독을 둘이나 배출했고 류덕환에게 국내외 8개 영화제의 신인상을 안겨준 작품이지만 정작 흥행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여름 시즌이 끝나가는 2006년8월31일에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개봉 첫 주에는 같은 날 개봉한 재난영화 <일본침몰>에 밀려 2위를 기록했고 2주차부터는 강동원,이나영 주연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개봉하면서 최종 67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 <천하장사 마돈나>는 2008년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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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흥행파워와 연기력을 두루 갖춘 대배우가 된 김윤석의 연기인생이 아귀를 연기했던 <타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은 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타짜>보다 한 달 먼저 개봉한 영화로 지금보다 정제되지 않은 김윤석의 다소 거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김윤석은 촬영 도중 류덕환이 연기한 동구가 친아들처럼 느껴져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가며 연기했다고 한다.
비록 전성기는 길지 않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 이상아는 한국 최고의 하이틴스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가 빨리 저물면서 영화에서 10년 넘게 활동이 뜸했던 이상아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의 엄마 역을 맡으며 하이틴 스타 시절과는 다른 성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동구가 가고자 하는 어려운 길을 인정하자고 전 남편을 설득하는 연기는 단연 일품이었다.
지난 2008년 오토바이를 운전해 귀가하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이언은 모델 출신 배우로 <천하장사 마돈나>가 영화 데뷔작이었다. 이언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가 다니는 학교의 씨름부 주장 박준우를 연기했다. 처음엔 씨름에 대한 열정이 없는 동구를 못 마땅하게 여겼지만 나중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동구에게 씨름을 가르치고 마지막엔 대회 결승에서 동구와 맞붙는다.
<천하장사 마돈나>에는 국내 활동명이었던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일본 아이돌 그룹 SMAP 출신의 가수 겸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도 특별 출연했다. 쿠사나기가 맡은 배역은 동구가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 역할이었는데 단순히 카메오라고 하기에는 분량도 결코 적지 않았다. 쿠사나기는 한국 활동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적지 않은 분량의 한국어 대사를 직접 외워 연기하는 열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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