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따뜻한 대답
[유재은 기자]
최근 몇 년간 내가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이 지난한 삶을 겪을수록, 인간이 견딜 수 없이 싫다는 것이다. 직장 문제, 주거 문제, 취미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로부터의 집단 괴롭힘 등, 괴로움의 종류나 형태는 다양했지만 결국 모든 고민은 '인간은 대체 왜 이럴까'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내 정신건강 상태에 따라 일정 부분 뉴스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둘 때도 많았다. 그것이 비겁한 회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기성세대로서의 죄책감에 괴롭기도 하고, 환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싫지만, 또다시 사용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좋은 어른은 고사하고,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일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종종, '저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겠지.' 싶을 정도로 크게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꿋꿋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크게 훼손될 정도의 상처를 겪은 후,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민할 때,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면 저렇게 다시 눈을 반짝이며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오로지 분노와 혐오로만 가득 찬 괴물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 결국 내 속성도, 나를 괴롭게 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냉소와 빈정거림의 태도만으로는 삶을 견딜 힘을 얻을 수 없고, 편안함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괴로웠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의 인간다움을 잠시라도 꺼내서 조금이라도 회복을 좀 하고 싶었다.
▲ 영화 <너와 나> 메인 포스터 |
ⓒ ㈜필름영 |
마냥 무겁기만 한 영화는 전혀 아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랑하는 대상과의 시간을 기억할 때,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온통 무겁고 슬프게만 기억하지는 않는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미성숙하지만 진솔한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관계, 삶, 죽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이 거창하지 않아서 좋았고, 비유나 상징 또는 기술적 꾸밈보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라서 좋았다.
영화를 보면서 울게 되는 감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이 작품 보면서 많이 울긴 했지만, 극적으로 슬픔이 극대화되고 고양되어 올라오는 그런 감정선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한 장면 안에서도 여러 다른 층의 감정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하은이와 세미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주인공들은 모르고 있지만 관객인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이 품고 있는 온기 등, 슬픔과 애틋함이 뒤섞인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수학여행 전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며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관객들도 그때로 돌아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시간을 한 번 더 마련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살면서 어떤 존재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그 이후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경우, 2008~2009년부터 함께 살던 고양이들을 각각 2022년 9월, 2023년 4월에 보내면서, 오히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비교적 단순명료하게 선명해졌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 처음이자 마지막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 이후 아이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자체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리고 언젠가 내 죽음 이후 아무도 그 시간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던 그 마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사람을,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랑이구나,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사랑의 힘을 정말 많이 느꼈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 사랑이 가득하다. 매일 아침 일상을 시작할 때 가족에게, 반려동물에게 '사랑해, 갔다 올게' 인사하는 순간. 좋은 곳에 가면 함께 가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함께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상대방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마음. 좋아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짐짓 괜찮은 척하는 마음. 그 사람 대신 울어주는 마음. 불길한 꿈을 꿨을 때 신변을 조심하라고 걱정해 주는 마음. 아주 잠깐이라도 연락이 안 되면 상대방의 안위가 걱정되고 불안해서 일상이 멈추는 일. 애칭을 지어 부르는 것. 오래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 잃어버린 반려동물 찾는 전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든 도우려는 마음. 상대방이 전화로 울음을 터뜨리면 진정될 때까지 소리 없이 함께 울며 기다려 주는 것. 서로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동동거리며 애쓰는 절절함.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눈빛.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위로하는 일. 집 앞에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아쉬워 인사가 길어지는 그 애틋함. 다친 피부에 물 닿지 말라고 랩을 칭칭 동여매 주는 손길.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평소 사람들로부터 꽤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고,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느슨하고 따뜻한 연결감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구나. 일상의 순간순간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랑으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구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미 내 일상 안에 모두 채워져 있고, 그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하겠구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의 평온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묵묵히 추모하며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는 것도 사랑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행복을 느껴도 되는지를 조심스러워하는 마음도 사랑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말해주는 것도 사랑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고통과 무력감 앞에서, 그럼에도 일상과 자연, 동물과 식물,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삶이 어차피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결론일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힘껏 살아보자고 다짐하게 하는 힘.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인간을 혐오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더 강력한 악의,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로 가득할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추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잔인한 비난과 폭력적인 공격이 쏟아지는 상황들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그 걸음들이,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결실을 보고, 서로를 지키는 끈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박혜수 배우가 했던 말처럼, 이 영화가 주는 사랑의 힘이, 오늘 그리고 내일의 우리를 살게 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마음이 소란할 때 이 영화를 생각하고, 하은이와 세미가 함께 부른 '너와 나' 음원을 들으며 위로받을 수 있기를.
영화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인 내가 이렇게 진심 어린 감상문을 쓰는 마음 역시, 이 영화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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