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의 최고 기후행동은 투어 중단일까?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지난 2019년 여덟 번째 정규앨범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 발표 이후 환경 보호를 이유로 투어를 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월드 투어가 일반적이지만 요르단에서만 콘서트를 2회 연 뒤 투어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공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콜드플레이는 2022년 3월 보완책과 함께 월드 투어를 재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연에 사용하는 전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한 것이다. 공연장에 태양광 타일을 설치한 후 충전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가 하면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뛰면 전력을 생산하는 장치를 바닥에 설치했다. 또 무대세트를 친환경 재료로 만들고 저에너지 LED 스크린 레이저를 사용해 전력 소비를 줄였다. 특히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항공 이동과 관련해 콜드플레이는 지속가능한 항공연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여기에 티켓이 한 장 팔릴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소 배출량이 앞선 월드 투어 때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
공연계에서 작품의 유통은 크게 투어와 라이선스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국제 유통과 관련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한국어 프로덕션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은 라이선스 형태도 있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내한공연처럼 예술가(단체)가 직접 이동해 관객을 만나는 투어 형태의 비중이 여전히 크다. 콜드플레이 같은 대중음악계 스타 밴드는 투어를 잠시 중단해도 생존에 타격을 받지 않지만, 시장이 작은 순수 공연예술 분야에서 투어 중단은 예술가들에게 만만찮은 경제적 타격을 준다.
그런데, 순수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기후위기를 이유로 투어를 중단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으로 유럽 현대무용계에서 ‘농당스(non-danse)’의 선구자로 꼽히는 안무가 제롬 벨은 대표적이다. 프랑스어로 비(非)무용을 뜻하는 농당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등장했는데, 일반적으로 춤이라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이지만 무용으로 분류되는 공연을 가리킨다. 춤의 개념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개념주의 무용으로도 불린다.
벨은 2019년 기후행동을 실천하기 위해 탄소 배출의 주범인 비행기 탑승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작업 과정의 변화를 추구해 큰 주목을 받았다. 작품의 물리적 이동이라는 일반적인 투어 대신 예술가의 콘셉트가 이동해 현지 창작/제작팀과 협력하는 것이 벨의 새로운 작업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2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벨의 ‘갈라’는 그의 콘셉트 투어링(Concept Touring)을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벨이 제시한 프로토콜과 안무 스코어를 토대로 한국 안무가 김윤진이 20명의 아마추어 참여자와 전문 무용수들의 리허설을 이끌었다.
오는 14~15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옵/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제롬 벨’은 벨의 급진적인 콘셉트 투어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대에 안무가가 홀로 등장해 아카이브 영상과 함께 자신의 삶과 경력, 작업을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벨 스스로 ‘자전적 안무’라고 칭했다. 하지만 벨이 비행기를 통해 대륙을 옮겨 다니는 투어를 중단한 만큼 한국 공연에서는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벨의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유럽에서는 제롬 벨 등 일부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기후행동에 나서고 있다. 예술가들의 기후행동은 신념의 문제인 만큼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 어렵다”면서 “기획자로서 벨을 포함해 기후위기에 대한 해외 예술가들의 다양한 대응 방식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친환경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05년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규약의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부터다. 일찌감치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추진해온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실천에 나섰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영국을 보면 2008년 기후변화법을 제정하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80% 줄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영국예술위원회가 2012년부터 영국 전역의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에 에너지와 물 소비를 줄이고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등 탄소 감소 계획을 시행하도록 했다. 영국 공연장들은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조명과 단열재로 건물을 개조하는가 하면 폐기물을 상당 부분 재활용하는 등 단기간에 혁신적인 성과를 거뒀다. 영국 국립극장은 2030년 탄소 제로를 목표로 2021년부터 ‘시어터 그린북(Theatre Green Book)’의 기본 표준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시어터 그린북은 지속 가능한 극장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으로 ‘프로덕션’ ‘건물’ ‘운영’에 따른 세부사항이 상세히 정리돼 있다. 여기에는 투어와 관련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지침 등도 자세히 나와 있다.
국내 공연계에서도 친환경 실천에 대한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국립극장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극장에 설치하고 조명을 LED로 모두 교체하는 등 에너지 절약과 함께 폐기물 재활용에 적극적이다. 국립극단의 경우 지난해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의상, 소품, 신발과 장신구 등 물품을 민간연극단체와 나눠 환경 보존을 실천하고 있다. 젊은 연극인들의 경우 종이 대신 온라인으로 티켓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친환경 실천에 동참하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투어 공연과 관련해서는 의미 있는 시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서양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유럽의 경우 항공 탑승 없이도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고 공연장 네트워크가 촘촘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않는 친환경 투어가 가능하다. 그래서 유럽의 일부 공연장은 최근 항공편으로 이동하는 작품은 라인업에서 빼는 급진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 국가 예술가들의 경우 탄소 중립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나 체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국제적 지명도를 얻기 위해 유럽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벨의 ‘콘셉트 투어링’에 대해 비유럽 예술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식민지화’ 또는 ‘아웃소싱’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이끄는 최석규 예술감독은 “기후위기에 대한 벨의 실천적 대응은 존중하지만, 이동 방식에 대해서는 보다 고민이 필요하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의 새로운 국제 이동성과 유통은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지 여러 예술가와 리서치 및 토론을 나누고 있다”면서 “다만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에서 ‘무엇이 함께 이동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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