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세월호 참사 9년 만에 해경 지도부 전원 '무죄'

김종훈 2023. 11. 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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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김종기 위원장 "오직 123정 정장 한 명만 처벌, 누가 납득할 수 있나"

[김종훈, 유성호 기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 유성호
  
2일 오전 10시 42분 서울 서초동 제1법정. 권영준 대법관의 입에서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라는 아홉 글자 말이 흘러나오자 방청석에선 "아..."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현장에 있던 한 세월호 참사 유족은 "이런 판결 들으려고 9년을 넘게 싸운 게 아니다"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가 이날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과 최상환 전 해경 차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면서 상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진 해경은 당시 현장에 출동한 123정 정장 김경일 경위 1명이 전부가 됐다.

구조 실패 책임과 별개로 이날 대법원은 사고 직후 퇴선 방송을 제때 한 것처럼 보고서를 꾸민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등)로 기소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이재두 3009함 함장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해경 지도부, 1-2-3심 모두 무죄... 왜?
 
▲ 대법원,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 무죄 판결... 유가족 “대한민국 사법부 죽었다” ⓒ 유성호

김석균 전 청장 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445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20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이들이 승객 퇴선을 유도하고 구조요원을 선체로 진입시켜 최대한 많은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반면 김 전 청장 등은 사고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법리적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2021년 2월 15일 1심 법원은 당시 구조 인력과 상황실 사이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즉, 이미 현장에 나간 구조대원들의 보고 자체가 부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전달된 내용만으로는 지휘부가 먼저 승객 탈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1심 재판부는 "현장 구조 업무가 명확히 이뤄지지 못한 건 평소 해경에서 조난 선박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정이 있다"며 "특히 침몰한 선박에 잠입해 퇴선을 유도하는 식의 훈련도, 관련 구조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큰 원인이 됐다. 해경 전체의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재판정에 있던 유족들은 "이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지난 2월 7일에 진행된 2심 결과도 1심과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VTS센터장의 보고 내용을 근거로 세월호 침몰이 임박해 즉시 퇴선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승객들이 아무런 퇴선준비 없이 선내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정도로 볼 때 쉽사리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 등 해경 지도부가 승객들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 결과를 회피할 조치가 가능했는데도 못한 점이 입증돼야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 선고로 확정됐다.

"여전히 좁은 시각... 이러니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반복되는 것"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아도 국가는 어떠한 지시,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정부 책임자들과 해경 구조 세력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대법원 선고 후 유족들은 대법원 정문 앞에 모였다. '수진아빠'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오늘부로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일말의 희망을 산산이 부수는 법원의 행태가 유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하고 분노를 느낀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 가진 사람, 권력 있는 사람, 기득권 세력 편의만을 위한 사법부가 됐다. 2014년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304명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출동한 123정 정장 한 명만 처벌받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해경정장은 죄가 있고 승객구조에 책임이 있는 지휘부는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누가 납득할 수 있나?"

수진아빠와 함께 선 시민들 역시 대법원의 판단을 규탄하며 "책임을 묻는 행위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이며 회복의 과정이고, 사회가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고 재발 방지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법원은 국가기관이자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법원이 그 책임을 다했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미현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여전히 좁은 시각으로만 해석하고 면죄부를 주는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 때문에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가 벌어진 것"이라며 "사법부는 법을 만들고 집행해온 이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사법부는 오늘로 해경지휘부에 대한 사법적인 판결이 끝났다고 얘기하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증거를 찾아내는 활동을 펼칠 것이고, 반드시 사회적 처벌까지 묻는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아도 국가는 어떠한 지시,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정부 책임자들과 해경 구조 세력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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