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핼러윈,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두 생존자 이야기

복건우 2023. 11. 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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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1주기] 핼러윈 분장하고 이태원 찾은 이주현씨... 이태원 입구서 발길돌린 김초롱씨

[복건우, 유성호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
ⓒ 유성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볼 때마다 물었어요. '내가 뭘 해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요?' 답을 들을 순 없지만 그분들이 그날 핼러윈을 즐기고 싶어 했던 건 모두가 알잖아요. 저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분들을 추모하면서 이태원에 갈 거예요.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길 거예요."

1년 만에 돌아온 핼러윈 주말,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28)씨가 그날 그 거리에 다시 섰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그는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거리를 홀로 찾았다. 1년 전 압사 참사로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곳이었지만, 슬프고 엄숙하게만 핼러윈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처럼" 핼러윈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생존자 이주현] 나는, 다시 핼러윈에 갔다
 
▲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 "나는, 다시 핼러윈에 갔다" ⓒ 유성호

주현씨는 해골 분장을 하고 꽃 모양 머리띠를 썼다. 그날 거리에는 멕시코 명절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이 펼쳐졌다. 그 명절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서 산 자들이 망자들을 떠올리며 마을 곳곳에 메리골드(금잔화) 꽃잎을 뿌린 것처럼, 주현씨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은 시민들에게 보라색 추모 리본과 팔찌를 나눠줬다. 

이틀 뒤인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현씨는 "다들 1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추모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어요"라고 떠올렸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가 시민들과 함께 이태원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분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지난해 10월 29일 토요일 밤, 주현씨는 인파에 휩쓸려 간 클럽 앞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병원에 이송됐다. 몇 명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꺼번에 쓰러져 그를 덮쳤었다. 구조대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곳곳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무릎과 발가락의 통증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주현씨는 스무 살 때부터 축제를 즐기는 청년이었다. 핼러윈 말고도 벚꽃축제, 불꽃축제 등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억눌리고 갇혀 있던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고 처음 간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충격적으로" 좋았다. 특히 핼러윈은 "안 가면 너무 아쉽고 후회할 것 같아" 코로나19 시기를 빼면 매년 찾았다.

주현씨는 참사 당일을 떠올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애써 기억하려 했다. 그가 핼러윈을 맞아 다시 이태원을 찾은 이유 중 하나도 "핼러윈이 문제가 아니라서"였다. 그날 이태원에 간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는 걸, 놀러 가서 죽었다는 비난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내기 위해서라도 주현씨는 핼러윈에 이태원을 다시 찾아야 했다. 

[생존자 김초롱] 나는, 핼러윈에 갈 수 없었다
 
▲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 “나는, 핼러윈에 갈 수 없었다” ⓒ 유성호

   
1년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33)씨도 올해 핼러윈에 가고 싶었지만, 차마 가지 못했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이태원 일대를 둘러싼 철제 펜스가 그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할 때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사흘 뒤인 3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초롱씨는 "신나고 즐거운 마음 대신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초롱씨는 잠들기 직전까지 뉴스를 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딱 1년 전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지난해 10월 29일 밤, 초롱씨는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인파에 휩쓸려 친구의 손을 놓쳤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발도 땅에 닿지 않았다. 이리저리 떠밀려 간신히 한 술집에 도착했지만, 인파는 여전했고 구조대원의 현장 진입은 늦어졌다. "경찰의 통제와 질서유지가 없었던 것이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초롱씨는 회상했다.

얼마 안 돼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진단받았다. 참사의 충격으로 군데군데 기억을 잃었고, 평범했던 일상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생존을 '다행'으로 여기지 못했다. "단순히 운으로 살아남은" 그는 희생자들의 죽음을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주변에 밀려 둥둥 떠다니는 상태였어요. 그렇게 옮겨져서 저는 결과적으로 살았고 누군가는 죽었는데, 이건 운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돼요."

초롱씨는 이태원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스물여섯부터 그곳에서 핼러윈을 즐겼다. 그때 느낀 모든 감정이 생생하고 강렬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찾아보고, 드랙(Drag) 문화를 접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초롱씨에게 이태원과 핼러윈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20대 자아를 형성하게 도와준 동네"이자 "숨통을 틔워준 유일한 공간"이었다.

초롱씨는 지난 5월 초 심리상담을 마치고 우울증의 시간을 건너오고 있다. 그 사이에도 초롱씨의 바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날 어디서부터 사람들이 몰렸고, 언제 압사가 발생했고, 구조대 투입이 왜 늦어졌고, 그 모든 설명의 주체가 국가여야 해요.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유가족들도 모르지 않아요. 다만 국가가 책임을 지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예요."

[생존자 이주현·김초롱] 우리는, 다시 핼러윈에 갈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
ⓒ 유성호
두 사람의 1년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통했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시작이라 믿었고,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주현씨와 초롱씨 모두가 그랬다.

주현씨는 참사 초기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고 싶었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한 주변의 2차 가해가 끊이지 않던 때였다. 참사 일주일 뒤 주현씨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그날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증언했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도 실명으로 응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임을 알면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현씨는 다른 생존자들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다.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건 초롱씨였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같은 말들을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았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후 시민대책회의를 통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생존자들을 만났다. 주현씨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냥 그 자리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아파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마주하는 것도, 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니까요. 괜찮아요."  

초롱씨에겐 다른 생존자들을 만나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생존자마다 그날에 대한 기억부터 고통을 받아들이는 정도까지 모든 게 달랐다. 이들을 지지하는 마음과 별개로, 생존자들을 만나 섣불리 말을 꺼내거나 억지로 얹어야만 하는 상황이 초롱씨에겐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지난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서 진술 도중 흐느끼고 있다.
ⓒ 남소연
초롱씨는 자신이 '생존자'보다는 '당사자'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이태원에 있든, 있지 않았든 사회적 참사에서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생존자이며, 자신은 원치 않게 참사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목격한 당사자라는 것이다. 

그가 쓴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에는 생존자로 불리는 것에 대한 초롱씨의 고민이 담겨 있다. 심리상담 과정을 기록한 책이었지만, 초롱씨는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었다. 젊은 세대를 왜곡된 시선으로 낙인 찍고, 이태원과 참사를 한데 묶어 바라보는 사회를 향한 말이었다.

"그 이전 핼러윈보다 사람이 많이 모인 것도 아니었고, 축제에 놀러 간 게 문제도 아니잖아요. 좁은 골목에서 군중 밀집을 관리하는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사가 발생했잖아요. 이태원과 핼러윈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진상규명과 함께 일상을 되찾고, 이태원과 핼러윈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초롱씨는 바란다. 올해는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내년엔 꼭 핼러윈에 갈 생각이다. 

"내년엔 이태원 한복판에서 핼러윈 파티를 열고 싶어요. 그곳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하나, 참사와 관련한 전시회를 열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우리의 축제와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년에는 핼러윈에 꼭 갈 거예요."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왼쪽)가 이태원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분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이태원에서 시민들에게 보라색 리본과 팔찌를 나눠주고 있다.
ⓒ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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