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팀 삼성생명, '어게인 2021' 노린다
[양형석 기자]
스포츠에서 한 팀을 오래 응원하다 보면 응원하는 팀이 우승을 노리는 강호로 군림할 때도 있지만 전성기가 지나 힘든 시기를 보낼 때도 있다. 지금은 여자프로농구 최고명문구단으로 불리는 우리은행 우리원도 '레알 신한 강점기' 시절엔 네 시즌 연속 최하위에 허덕이던 '암흑기'가 있었다. 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만족스러운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시기에도 팀 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응원하는 팬들은 농구를 보는 재미가 남다를 것이다. 삼성생명은 1989년생 배혜윤과 1992년생 김단비 정도를 제외하면 6개 구단 중 젊은 유망주들이 가장 많은 팀이기 때문이다. 1997년생 윤예빈과 강유림, 1998년생 이주연, 1999년생 키아나 스미스, 2000년생 신이슬, 2003년생 이해란과 조수아 등이 대표적이다. 상성생명 팬들은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응원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 윤예빈이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이주연과 스미스가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시즌 아웃 되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16승14패로 정규리그 3위에 오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번 시즌에는 지난 시즌 경험을 쌓았던 선수들이 더욱 성장했고 부상선수들도 시즌 초·중반 차례로 복귀할 예정이다. 삼성생명의 임근배 감독이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이유다.
▲ 강유림은 이적 2년 차였던 지난 시즌을 통해 삼성생명을 대표하는 슈터로 성장했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2006년 여름리그 우승 이후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우리은행에 밀려 무려 15년 동안 챔프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삼성생명은 2020-2021 시즌에도 5할이 채 되지 않는 성적(14승16패)으로 정규리그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간신히 봄 농구행 막차를 탄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을,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천하의 박지수가 버틴 KB스타즈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15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전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구단들과 달리 삼성생명은 2020-2021 시즌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리빌딩에 돌입했다. 챔프전 MVP였던 김한별(BNK 썸)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며 하나원큐와 BNK의 신인지명권을 쓸어 담은 것. 김한별이 빠진 삼성생명은 2021-2022 시즌 5위로 순위가 떨어졌지만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183cm의 장신 유망주 이해란과 WNBA 출신의 혼혈선수 키아나 스미스 같은 특급유망주를 지명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 팀의 리더이자 에이스 배혜윤을 중심으로 강유림, 스미스, 이주연, 이해란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워 BNK,신한은행과 중위권 경쟁을 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26일 우리은행과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이주연이 왼무릎 십자인대파열, 스미스가 왼무릎 쓸개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 나란히 시즌 아웃 됐다. 이미 윤예빈이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생명은 주전가드 3명을 모두 잃은 셈이다.
적지 않은 농구팬들이 가드진이 초토화된 삼성생명이 후반기에 크게 추락할 거라 전망했고 실제로 삼성생명은 후반기 남은 13경기에서 5승8패로 부진했다.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BNK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듯 했지만 결국 BNK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2연패를 당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플레이오프 탈락은 아쉬웠지만 부상자가 속출했던 시즌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선전한 시즌이었다.
2년 전 '김한별 트레이드' 때 하나원큐에서 삼성생명으로 이적한 2020-2021 시즌 신인왕 강유림은 이적 첫 시즌 7.9득점4.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리고 붙박이 주전으로 도약한 지난 시즌에는 12.8득점5.6리바운드2.4어시스트1.5스틸(2위) 3점슛성공률36.7%(5위)를 기록하며 삼성생명의 외곽공격을 이끌었다. 정확한 외곽슛을 던질 수 있는 전문슈터가 부족한 삼성생명에게 강유림은 이적 2년 만에 팀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됐다.
▲ 지난 시즌 부상으로 중도 이탈했던 스미스는 이번 시즌에도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힌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유일하게 FA자격을 얻었던 김한비와 계약기간 1년, 연봉총액 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 삼성생명은 외부FA 영입이 없었던 대신 지난 5월 우리은행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대학농구 출신 포워드 이명관을 내주고 184cm의 센터 방보람을 영입했다. 프로에서 두 시즌을 보낸 2003년생 방보람은 아직 프로무대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 배혜윤의 후계자로 육성시킬 유망주다.
WKBL에는 배혜윤보다 크고 젊고 운동능력이 좋은 센터는 많지만 배혜윤만큼 영리하게 플레이하는 센터는 찾기 힘들다. 지난 시즌에도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5경기에 결장했음에도 16.28득점6.3리바운드4어시스트를 기록한 배혜윤은 무리하게 골밑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효과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유니크한 빅우먼이다. 아무리 삼성생명에 재능 있는 유망주가 많다 해도 아직 삼성생명에서 배혜윤을 대체할 선수는 없다.
WNBA 출신의 혼혈선수 키아나 스미스는 지난 시즌 17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 되면서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신인왕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스미스는 지난 시즌에도 스텝백 3점슛 등 WKBL에서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기술들을 선보이며 13.18득점3.6리바운드4.4어시스트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시즌에도 스미스가 부상 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완주한다면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루키 시즌에 28경기에서 5.8득점3.1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이해란은 2년 차 시즌에 전 경기에 출전해 9.1득점4.4리바운드1.2스틸로 성적이 향상됐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이번 시즌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해란이 팀의 핵심포워드로서 또 한 번의 성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해란이 우리은행의 박지현이나 KB의 강이슬을 위협하는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다면 삼성생명은 비로소 우승에 도전할 강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김단비와 박지현이 건재한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과 WKBL의 '절대자' 박지수가 돌아온 KB가 '양강'으로 버틴 이번 시즌 삼성생명을 우승후보로 구분하는 농구팬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아무도 우승후보로 지목하지 않았던 2020-2021 시즌에도 대이변을 일으키며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복병'이 등장해 우리은행과 KB의 양강구도를 무너트린다면 그 주인공은 삼성생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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