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재판은 정치가 아니다

지호일 2023. 11.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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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돌연 단식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탁월한 생존 본능이 이번에도 작동하는구나' 생각했다.

이 대표 재판 중 가장 먼저 개시된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1년2개월째 1심이 진행 중이다.

선거법은 1심 재판을 기소 뒤 6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못 박았지만, 이 대표 재판은 이제야 반환점을 돌 정도로 게걸음이다.

이 대표는 정치 투쟁을 하듯 재판에 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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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돌연 단식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탁월한 생존 본능이 이번에도 작동하는구나’ 생각했다. 곡기를 끊고 드러눕는 것에 사는 길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간파했다는 느낌 말이다.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원은 지팡이를 짚고 기신기신 법정에 나온 제1 야당 대표를 차마 감방에 가두지 않았다.

그러나 끝은 아니다. 1년여 그를 쫓은 검찰은 집요했다. 구속영장에 넣었던 백현동 개발비리 사건을 분리해 지난 12일 먼저 기소하고, 그 나흘 뒤 위증교사 혐의로 또 한 번 기소했다. 현 정부 들어 네 번째 기소였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9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지난 3월엔 대장동 개발비리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기소했다. 끝을 보겠다는 검찰과 필사적으로 그물망을 빠져나가려는 이 대표 간 추격전은 현 정부 내내 이어질 것이다.

재판에 포위된 형국에서 이 대표의 생존 본능은 다시 발현되기 시작했다. 재판 지연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다. 이 대표 재판 중 가장 먼저 개시된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1년2개월째 1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가 대장동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몰랐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 또 백현동 개발부지 용적률 상향 등 특혜 조치가 박근혜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이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에 대한 심리다. 선거법은 1심 재판을 기소 뒤 6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못 박았지만, 이 대표 재판은 이제야 반환점을 돌 정도로 게걸음이다.

더욱이 이 대표는 지난 8월 25일을 마지막으로 법정에 나오지 않고 있다. 단식과 국회 국정감사 등 재판 외적인 이유에서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 27일 공판에도 이 대표가 불출석하자, 재판장은 “피고인은 오늘도 안 나왔나”라며 탄식했다.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도 “보기 드문 상황”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내년 4월 총선까지, 적어도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는 1월 이전 선고가 내려지는 걸 막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혹시나 조기에 유죄가 선고돼 이 대표 리더십이 공격받는 상황은 피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되면 민주당이 대선 때 받은 국고보조금 434억원 반납 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이 대표 혐의와도 연결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은 더욱 꼬여 있다. 이씨 아내가 지난 7월 남편 동의 없이 변호인 해임신고서를 낸 것을 시작으로 변호인 교체·선임 잡음 등으로 재판은 한 달 이상 공전했다. 이씨 측은 공판 절차가 막바지에 이른 최근 법관 기피 신청까지 내 재판 자체를 아예 멈춰 세웠다.

대장동 비리·성남FC 후원금 재판의 경우 백현동 사건까지 병합되면서 몸집이 더욱 커졌다. 1심 선고까지 1~2년은 더 걸릴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표 측은 이에 더해 비교적 사건 구조가 단순한 위증교사 혐의까지 얹어서 심리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상태다.

검찰의 가혹한 표적 수사가 문제 아니냐고 이 대표는 항변한다. 피고인이 방어권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는 없다. 다만 영장 기각 때도 ‘공당 대표’라는 지위의 덕을 본 이 대표가 재판 과정에서도 ‘언터처블’로 행세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일반 피고인은 생각도 못 할 특권 아닌가.

이 대표는 정치 투쟁을 하듯 재판에 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가려 유무죄를 판단하는 법정은 정치가 아니다. 모종의 카드로 정국의 판세를 뒤집듯 재판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대장동 사건으로 기소되자 “이제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다.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절차적 정의에 따라 재판받고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는 게 국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 아닐까.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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