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마키아벨리와 리바이어던
“이제 그만두셔야죠.”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악수를 청하는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몇몇 의원은 악수를 하며 대통령의 얼굴을 보지 않았고, 몇몇 의원은 아예 악수 자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른바 ‘정치의 실종’을 이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의 실종’은 ‘정당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당’의 성격을 잃은 지 오래. 여당은 대통령의 경호부대로, 야당은 당 대표의 방탄조끼로 전락해 버렸다. 이 나라에 공당(公黨)은 없다. 그저 대통령과 당대표의 사당(私黨)이 있을 뿐이다.
민주당은 마키아벨리스트를 군주로 모신 정당에 가깝다. 그 당의 대표는 ‘대인 조종의 기술, 도덕에 대한 무관심, 희생자에 대한 공감 부족, 제 이익에 대한 전략적 초점’ 등 이른바 ‘마키아벨리아니즘’의 전형적 특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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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으로 전락해버린 여야 모습
정치실종은 정당의 죽음서 비롯
당내 이견 허용과 통합의 언어가
정치 기능 되살리는 변화의 시작
」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어제 한 약속을 오늘 뒤집고, 도덕으로부터 자유롭고, 자기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고통에 무감한 그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냉철한 계산 하에 타인들을 조종해 제 이익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가 의원이 되고 대표가 된 것은 개인적인 생존의 전략이었을 뿐, 거기에 무슨 공익이나 사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그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당을 대표 개인을 결사옹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1인 정당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편, 대통령에 대한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인식은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에 가깝다. 세상은 어차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루어진 무정부 상태. 거기서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누리려면 자신들의 권리를 절대군주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믿음. 대통령 자신도 그 믿음을 공유한다. 그러니 당정관계가 가능할 리 없다. 절대군주가 자신의 권한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표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지지율 2%짜리 허수아비를 앉혀놓은 것이다.
국회에 대한 무관심한 경향도 거기서 비롯된다. 로크는 민의가 의회를 통해 표현된다고 보았지만,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주권의 단일성과 철회 불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니 의회를 주권의 단일성을 제한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볼 수밖에. 리바이어던은 인민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두 개의 칼을 휘두른다고 한다. 정의의 칼과 전쟁의 칼. 그래서 나라 안의 정치는 수사·감사·조사로 대신하고, 나라 밖의 외교는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긴장으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재명 대표와 함께 마키아벨리즘은 민주당의 정치철학이 되어 버렸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가짜뉴스, 마타도어, 증인 조작, 허위 인터뷰 등 온갖 의심스러운 수법을 사용해 왔다.
마키아벨리는 부도덕한 수단을 사용해도 그 목적만큼은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수단의 부도덕은 그것이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만 정당화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의심스러운 수단을 정당화해 줄 그 ‘목적’마저 잃어버렸다. 그 당의 대표는 지금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해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그의 측근들은 전원 그 일과 관련하여 구속된 바 있다. 지금 민주당이 사용하는 권모술수는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의 수호자가 아니라 그것의 파괴자를 위한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목적을 잃은 지 오래. 공천권과 당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원내 기득권자와 원외 기회주의자들의 너절한 욕망이 당 대표에 대한 충성이라는 형태로 결집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지지자들 또한 폭력적 훌리건에 가까워졌다.
그런 당을 상대로 선거에 참패했으니, 지금 집권여당의 상태가 어느 지경인지 말해 무엇하겠는가. 뒤늦게 혁신을 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정작 참패의 원인이 된 대통령의 자성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선거에 참패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용산과 여당이 깊은 병에 들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민심이 최악의 상태라는 것조차 모르고 총선을 맞았을 테니까. 민주당을 보라. 승리에 취해 제 몸 썩어가는 냄새를 못 맡고 있잖은가.
아직 변화할 시간은 있다. 진단은 내려졌고 처방은 분명하다.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복원하고, ‘배신자’니 ‘내부총질’이니 하는 편협함을 벗고 당내에 이견과 이견자를 허용하며, 허접한 이념 드라이브로 국민을 갈라치지 말고 통합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아니다. 제도가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대통령, 당내의 아부자와 당 밖의 지지자들이 깨닫는 것, 그게 변화의 출발이다. 입에 ‘자유민주주의’를 달고 사는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모른다는 것. 이상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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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칼럼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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