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중국 전기차 기적, 거저 된 게 아니다
중국 자동차산업은 20여 년 전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다. 글로벌 메이커들이 몰려와서 합작공장을 많이 짓긴 했다. 방대한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겨낭한 것이었다. 정작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별로였다. 미국·독일·일본 자동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전기차다. 내연기관 차량의 지배자였던 미국과 독일은 그때만 해도 전기차에 관심이 적었다.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앞서 있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문화대혁명을 거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우디에서 핵심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완강(萬鋼)이다. 그는 내연기관 경쟁으론 중국이 자동차 후진국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점과 친환경 시대가 도래할 것을 확신하고 전기차 집중 육성에 나서도록 중국 정부를 설득했다. 독일에서의 보장된 삶을 버리고 2000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퉁지대 총장을 거쳐 2007년 과학기술부 부장(장관)으로 임명된다. 35년 만의 비(非)공산당원 장관이었다. 그는 이후 11년간 과기부를 이끌면서 중국의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전기차 육성에 ‘올인’한다.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제공했다. 2009~2022년 세금 감면이 300억 달러(약 40조원)라는 블룸버그 분석도 있다. 대규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시스템을 전기차로 바꿔 신생 업체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까지 조성해 줬다. 혜안과 집념으로 중국의 전기차 시대를 연 완강을 외신들은 ‘중국 전기차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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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 돼
20여 년 국가역량 쏟아부은 결과
한국, 신산업 육성에 사활 걸어야
」
올해 중국은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에 오를 예정이다. 지난 8월 기준 약 321만 대 수출로 일본(277만 대)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일등 공신이 전기차다. 수출 자동차 3대 중 1대가 전기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중국 전기차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 전기차를 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EU의 중국 전기차 보조금 조사는 그런 공포심의 산물이다. 규제로 수입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단기간에 중국 전기차를 따라잡긴 어려워 보인다. 그들에겐 배터리 산업과 광물 공급망 등 중국이 20여 년에 걸쳐 형성한 전기차 생태계가 없다.
중국의 전기차 기적 같은 일을 한국 사회는 해낼 수 있을까. 해외 유학파 엔지니어를 데리고 와서 전권을 줄 수 있을까. 신산업에 전폭적인 세제 지원을 할 수 있을까. 사회 시스템을 확 바꿔 생태계를 키워줄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고도성장기에 한국이 했던 일들이다. 박정희 정권에선 대통령이 해외 과학자 유치를 직접 챙겼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로 모셔온 과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가 주어졌다. 봉급은 국립대 교수의 3배, 대통령보다 많았다. 대통령이 KIST 예산엔 손도 못 대게 했다. 그들이 개발한 컬러TV, 광통신용 광섬유 등의 기술이 기업으로 퍼져나갔다. 1980년대 삼성이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규제에 예외를 만들기도 했다. 그 공장에서 세계 최초 D램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와 기업이 그렇게 ‘원팀’으로 움직이며 자동차, 반도체, 조선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전략과 열정이 많이 쇠퇴했다. 중국 업체와 경합하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이란 국가 전체와 싸우는 느낌”이라고 비명을 지른 지 오래다.
정부는 수십 년째 신산업을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쟁과 관료주의, 규제라는 3대 괴물이 신산업의 출현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가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 그 사이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빨리 성장률이 하락하는 ‘조로(早老) 경제’가 됐다. 새로 산업이 일어나면 일자리와 국부(國富)가 획기적으로 창출되는 기적이 생긴다. 정치권과 민간의 비전과 집념이 합작해야 가능하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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