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방심은 가장 위험한 적” 50년 만에 또 당한 이스라엘

2023. 11. 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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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은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Those who fail to learn from history are forced to repeat it).”

1975년 4월 30일(이하 현지시간) 월남 패망 당일 토머스 폴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사이공 지부장은 이 같은 내용의 전문을 워싱턴 DC로 보낸 뒤 후송 헬기에 몸을 실었다. 폴가는 “또 다른 월남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교훈을 얻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은 46년 후인 2021년 8월 16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했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망각한 대가였다.

그리고 이번엔 ‘역사 교훈의 덫’에 이스라엘이 걸려들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경 지대를 대규모로 공격했다. 그런데 정확히 50년 전인 1973년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벌어진 제4차 중동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적의 기습을 놓쳤고, 이스라엘방위군은 일방적으로 당했다.

「 병력 약한 하마스의 기습 침공
약자가 강자 꺾는 ‘비대칭 전쟁’
북한, 핵무기로 조기 승부 꾀해
경계에 또 경계, 긴장 풀면 안돼

핵 사용 검토한 1973년 4차 중동전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국경선의 철조망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4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은 자존심이 구겨진 차원을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쟁 초반 이집트(남)와 시리아(북)의 협공으로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은 다급한 나머지 핵무기까지 꺼내 들려고 했다. 이스라엘은 1950~60년대 비밀리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지금도 핵보유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방어에 성공한 뒤 역습을 벌여 국경을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면서 다행히 핵카드를 접었다.

제4차 중동전쟁에 대한 사전 경고는 충분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가말 압델 나세르 당시 이집트 대통령의 사위인 아슈라프 마르완은 전쟁 전날 “내일 전쟁이 개시된다”고 이스라엘에 알렸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이스라엘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점을 에둘러 경고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휘부는 이 같은 정보를 평가절하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압승을 거둔 뒤론 아랍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나 ‘6일전쟁’으로 더 잘 알려졌다. 또 수에즈 운하를 따라 모래 방벽인 ‘바레브 라인’을 쭉 세워놓았기 때문에 선공을 허용해도 반격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고압 펌프로 바레브 라인을 무너뜨렸다. 허를 찔린 이스라엘은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1973년의 역사와 2023년의 상황은 데칼코마니다. 2023년의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경계에 설치한 ‘아이언 월(Iron Wall)’이 원격조종 카메라·레이더 장치 등 센서와 원격 기관총 등 첨단 무기로 하마스를 막아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거주자에 일자리를 주고, 가끔 날아오는 로켓을 단거리 방공체계인 아이언 돔(Iron Dome)으로 요격하면 하마스의 준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불도저·땅굴·패러글라이더로 아이언 월을 무력화했다. 또 로켓 6600발을 한꺼번에 쏘면서 아이언 돔의 동시 요격 능력을 제압했다. 이번에도 침공 사흘 전 이집트가 관련 정보를 제공했고 아이언 월 근무자는 수개월 전부터 이상 조짐을 보고했지만, 상부에서 이를 무시했다. 결과는 민간인 포함 1400여 명의 사망과 220여 명의 인질이었다.

이스라엘은 50년전 역사를 왜 잊었을까. 이스라엘은 군사력에서 하마스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감히 전쟁을 벌이겠냐며 얕본 것으로 추정한다. 더 나아가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fare)의 위험성을 간과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에 비교우위를 집중하는 비대칭 전쟁을 시작했다.

약자가 강자 이긴 적 더 많은 현대전

아이번 애러긴-토프트 미국 홀리크로스 대학 방문교수는 1800~1998년의 197개 분쟁에서 강자가 이긴 경우는 70.8%라고 분석했다. 1950년 이후로 시기를 좁힌다면 약자의 승리가 55%로 강자보다 더 높았다. 강자와 약자의 전략이 동일하면 강자가 유리하지만, 서로의 전략이 상이한 상황에선 약자의 승산이 더 높았다는 게 애러긴-토프트의 분석이다.

예를 들면 강자가 직접공격을 선택하면 약자는 게릴라전으로 대항하는 게 비대칭 전쟁 전략이다.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진 사례가 그렇다. 특히 하마스와 같이 목숨을 희생할 각오로 극단적 방법을 마다치 않는다면 승부의 추는 약자 쪽으로 더 기울어질 수 있다. 이게 비대칭 전쟁의 역학이다.

남의 전쟁은 우리에겐 최고의 참고서다. 우리가 맞대고 있는 북한은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칭 수단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 국방부는 『2022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핵·WMD(대량살상무기), 미사일, 장사정포, 잠수함, 특수작전부대, 사이버전자전부대 등 비대칭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며 “유사시 비대칭 전력 위주로 기습공격을 시도해 유리한 여건을 조성한 뒤 전쟁을 조기에 종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비대칭 전쟁에만 대비하자는 결론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를 오독한 것이다. 전쟁은 매번 예상이나 준비와 달리 흘러간다는 게 중동전쟁은 물론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의 교훈이다. 북한은 우리의 대응을 간 보면서 빈틈을 노릴 묘수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고 있다. 방종관 서울대 산학협력교수(예비역 육군 중장) “군사적 경쟁에서 상대도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며 “남북한 간 창과 방패의 시소게임은 계속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군은 늘 긴장하고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그 정도가 편집광적이어야만 한다. 역사를 되풀이하는 건 바보다. 남의 바보짓을 뻔히 보고도 바보처럼 군다면 더 큰 바보다. 지난달 31일 새롭게 바뀐 군 지휘부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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