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99) 창밖에 국화를 심어

2023. 11. 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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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창밖에 국화를 심어
작자 미상

창밖에 국화를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 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淸) 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해동가요 일석본(一石本)

가을의 축복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조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는다.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마저 돋아 오니 이 계절의 아름다움과 나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 흥취를 그대로 보낼 수 없다. 아이에게 거문고 음조를 청으로 맞추라 한다. 점차 길어가는 밤을 벗과 함께 새도록 놀아보리라.

가을을 즐기는 옛사람의 풍류가 이러하였다. 삶을 즐기는 데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절대적이었다. 그 자연 속에 마음 맞는 벗과 함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가을은 시의 계절이다. 많은 명시가 가을에 태어났다. 가을을 소재로 한 시도 많다. 폴 베를렌은 ‘가을날 비올롱의 가락 긴 흐느낌/ 사랑에 찢어진 내 마음을 쓰리게 하네’라고 노래했으며,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해달라’고 했다. 김현승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해달라고 했다. 자연이 주는 축복 속에 시와 함께 보내는 가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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