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항 영접 vs "5분 안에 결정해"…베르바토프, 그리고 두 얼굴의 퍼거슨 [트랜스퍼 마켓]
(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현대 축구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 그의 '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 있다.
지금은 프리미어리그 '빅6'에 포함될 만큼 전력이 막강한 토트넘 홋스퍼는 사실 2010년 이후부터 구단이 다시 부흥한 경우다. 이영표가 입단하던 2005년 전후엔 유망한 선수를 잘 길러 팔아넘기는 '셀링 클럽'의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개러스 베일이라는 웨일스 풀백을 싸게 데려온 뒤 윙어로 개조,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 거액 받고 넘기거나, 크로아티아 유망한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를 잘 키워 역시 레알에 팔아먹는 등 우승을 위해 뛰는 팀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장사꾼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한 행보에 또 하나의 선수가 토트넘에서 무럭무럭 성장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 맨유의 마지막 황금기에 일조했다. '우아한 공격수'로 불리는 불가리아의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였다.
지난 2006년 1700만 유로(약 220억원)에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한 베르바토프는 북런던 연고 구단 공격 핵심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토트넘 최고의 공격수로 롱런하던 로비 킨과 짝을 이뤄 막대한 득점을 창출했다. 두 선수는 2시즌 동안 53골을 합작해냈고 베르바토프 또한 토트넘에서 통산 102경기 46골을 집어넣으며 이름을 날렸다. 2007/08시즌엔 첼시를 누르고 지금까지도 토트넘의 가장 최근 우승컵으로 남아 있는 EFL컵(리그컵) 우승도 차지했다.
베르바토프의 실력에 많은 유럽 구단이 주목했다. 퍼거슨 감독 지휘 아래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을 보유한 당대 최고의 구단 맨유도 마찬가지였다. 베르바토프에 눈독을 들인 맨유 관계자는 스카우트나 고위 관계자가 아닌, 퍼거슨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이 원했던 베르바토프를 데려오기 위해 감동을 선물했다.
베르바토프는 한 번은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적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퍼거슨과의 만남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미 맨유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베르바토프는 공항에서 구단으로 직접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앞엔 직접 마중 나온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 2008년 8월, 여름이적시장 마지막 날이었다.
퍼거슨은 베르바토프에게 "날씨는 어떻냐"고 물었고, 이에 베르바토프가 긴장해서 말도 더듬을 정도였다. 에이전트와 빠르게 눈빛 교환을 나눴지만 에이전트도 갈피를 못잡는 상황이었다.
베르바토프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는 "퍼거슨은 매우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른 성공적인 감독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이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존중하고 온전히 집중해주는 감독이었다"고 훗날 평가했다.
공항으로 직접 마중을 나온 것 또한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는 "매우 인상깊은 행동이었다"고 밝히며 "퍼거슨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한껏 들어올려 자신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이 맨체스터 공항까지 마중 나온 다른 이유는 있었다. 당시만 해도 퍼거슨 감독이 '시끄러운 이웃'이라고 표현하며 다소 깔봤던 맨체스터 시티 역시 베르바토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시티는 2008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왕족 셰이크 만수르를 새 주인으로 맞아들여 과감한 투자를 시작할 때였다. 맨시티 또한 베르바토프 정도면 새 시대를 열어가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베르바토프가 마음만 먹으면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입단할 구단만 바꾸면 된다. 맨체스터에 내려 베르바토프의 마음이 바뀔까봐, 맨시티의 마지막 하이재킹이 벌어질까봐 퍼거슨 감독은 공항에 직접 나온 셈이다.
당시 영국 언론들도 "베르바토프가 맨유로 간다", "아니고 맨시티로 간다"는 식의 각기 다른 보도를 낼 때였다.
하지만 베르바토프의 마음은 확고했다. 그는 맨시티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맨유의 역사, 감독, 그리고 거쳐간 선수들 모두 위대했다"며 "당시엔 맨시티와 맨유를 비교할 순 없었다. 내 마음 속에는 오직 맨유 뿐이다"며 맨유에 대한 지대한 충성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토트넘 구단을 이끄는 다니엘 레비 회장이 맨시티로 보내려고 하자 베르바토프가 회장실 문을 발로 '뻥' 차며 맨유만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퍼거슨이 이렇게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환한 웃음과 밀착 스킨십으로 베르바토프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이면엔 명장의 냉정한 판단도 빠지지 않았다. 베르바토프를 영입하고자 전력을 쏟은 만큼 맨유를 떠나야 하는 누군가에게 굉장히 차가웠다.
당시 맨유 공격진엔 프레이저 캠벨이라는 미완의 대기가 있었는데 그가 베르바토프 이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캠벨은 화려한 맨유 공격수들 사이에서 출전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2008년 여름 임대를 모색했다. 그리고 당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중위권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위건 애슬레틱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브루스 감독과 만나 대화까지 나눌 정도였다. 캠벨은 위건 임대를 마무리짓기 위한 계약서가 팩스로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상태였다. 위건은 맨체스터 위성 도시로 두 도시는 가깝다. 브루스 감독이 직접 맨체스터에 와서 캠벨을 데려갈 찰나였다.
하지만 이 때 캠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바로 베르바토프를 공항까지 친히 나와 영접하던 그 사람, 퍼거슨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캠벨에게 대뜸 "(토트넘에 있는)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3000만 파운드(550억원)에 영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네가 토트넘으로 임대를 가야 베르바토프의 이적도 성립된다"면서 "5분 안에 다시 전화를 걸 테니 답을 달라"며 최후통첩을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뭔가를 얻기 위해 뭔가를 버려야 할 때 퍼거슨 감독은 냉정했다. 5분이란 시간은 큰 의미가 없었다. 브루스 감독은 "널 영입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캠벨은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토트넘으로 가기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토트넘 흰색 유니폼을 입었다. 가기 싫다고 했다가는 퍼거슨 감독 눈밖에 나서 축구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를 판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의 축구인생이 추락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그는 2008/09시즌 토트넘에서 프리미어리그 단 10경기를 뛰었고, 선발은 한 경기에 그쳤다. 이후 맨유로 돌아왔지만 제대로 뛰지 못하다가 선덜랜드로 쫓겨나듯 이적했고 그러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사라져 갔다.
물론 베르바토프도 퍼거슨 감독의 차가운 면모를 입단 이후 느꼈을 것이다. 베르바토프를 그렇게 극찬하게 데려왔지만 퍼거슨 감독은 그가 강팀과의 경기에선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는 공격수라는 것을 깨닫고 로테이션 멤버로 쓰기 시작했다. 퍼거슨 감독이 추구하는 빠른 공격에 베르바토프는 너무 느렸다.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지만 백업 공격수로 뛰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중요 경기 등에선 벤치로 밀리며 얻어낸, 상처 뿐인 영광이었다.
2012년 여름 아스널 주장 로빈 판페르시가 맨유에 오는 역사적인 이적이 벌어질 때 베르바토프는 풀럼으로 쫓겨나듯 이적하며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생활을 마무리 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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