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아재폰…깊어지는 삼성전자의 고민
“갤럭시 제품이 연령대별로 선호도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올해 7월 열린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이 꺼낸 이야기다. 그는 1020세대의 ‘아이폰 선호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이어 “젊은 세대 마음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시장은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1020세대의 갤럭시 외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임원진이 위기감을 느낀 만큼 곧 개선책이 나오지 않겠냐는 기대감을 비치기도 했다.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MZ세대를 겨냥해 명품 브랜드 협업, 강남 체험형 매장 등 각종 정책을 내놨지만, 젊은 세대의 ‘갤럭시 외면’ 현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대 남성 갤럭시 선호도 지속 감소
젊은 세대의 ‘갤럭시’ 외면 현상은 숫자로 나타난다. 한국갤럽의 ‘2023년 스마트폰 사용률·브랜드’ 조사를 살펴보면, 18~29세의 아이폰 사용률은 65%로, 32%를 기록한 ‘갤럭시’의 2배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아이폰 현상이 두드러진다. 18~29세 여성 아이폰 사용률은 71%에 달한다.
한국갤럽이 2021년과 2022년 똑같은 주제로 조사한 설문조사와 비교해보면, 젊은 세대의 ‘아이폰 선호, 갤럭시 외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해가 지날수록 1020세대의 ‘아이폰’ 선택 비율이 상승했다. 2021년 18~29세 남성 아이폰 사용률은 42%에 불과했다. 이때만 해도 젊은 남성 사이에서는 갤럭시의 인기가 더 높았다. 갤럭시 사용률이 46%였다. 2022년에도 아이폰 사용률은 43%에 그쳤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아이폰 사용률이 60%로 치솟으며 상황이 역전됐다. 갤럭시S22 시리즈가 ‘휴대폰 성능 제한 논란’ 등으로 휘청거렸고, 동시에 아이폰14가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영향이 컸다. 기술에 민감한 젊은 남성들이 갤럭시에서 대거 아이폰으로 갈아탔다. 젊은 여성은 과거부터 ‘아이폰’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내왔다. 2021년부터 18~29세 여성의 아이폰 사용률은 60%를 웃돌았다. 2023년에는 처음으로 70%를 돌파했다.
10대와 20대의 ‘갤럭시 외면’은 한국에서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갤럭시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인지도가 떨어지는 외국은 갤럭시 사용률이 더 낮다. 미국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가 10월 공개한 연례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10대 중 87%는 아이폰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럭시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휴대폰 사용자는 13%에 그쳤다. ‘다음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을 이용할 것’이라고 답한 10대도 88%였다. 중국은 자국 공무원에게 아이폰 금지령을 내리는 등 정부가 직접 나선 끝에야 아이폰 판매량을 소폭 감소시켰다. 다만 30대 이상 소비자가 줄어든 것일 뿐, 중국 젊은 세대는 정부의 아이폰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폰15가 중국 시장에 풀린 첫날, 1분 만에 매진됐다. 과거 한한령이 퍼졌을 때, 갤럭시 브랜드가 중국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것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충성도가 높은 팬덤의 보유 차이
유독 갤럭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답은 하나다. ‘충성도’ 차이다. 아이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갤럭시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 스마트폰·PC 시장 분석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올해 8월 국내 30대 이하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첫 스마트폰을 갤럭시나 LG 등 안드로이드폰으로 선택한 소비자의 53%가 아이폰으로 기종을 바꿨다고 답했다.
반면 첫 스마트폰을 아이폰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92%가 여전히 아이폰을 쓰고 있다고 답했고 76%는 앞으로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쓸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충성도를 결정짓는 디자인, 성능, 브랜드 이미지에서 갤럭시가 아이폰에 밀린 영향이 크다고 진단한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내놓으며 현재의 스마트폰 형태를 최초로 제시했다. 길쭉한 막대기, 이른바 ‘바(BAR)’형 스마트폰 디자인은 애플이 정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직접 챙길 정도로 애플은 아이폰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 스마트폰 디자인은 사실상 아이폰의 ‘변형’에 가깝다. 갤럭시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바형 스마트폰’을 빠르게 내놔 시장에 안착했지만, 디자인 트렌드를 이끄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갖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19년에야 ‘폴드’ 시리즈를 내놓으며 디자인 유행을 선도할 만한 제품을 만들었다.
20대 남성 소비자가 민감해하는 성능 부분에서도 아이폰에 밀린다. 순수 하드웨어 성능만 보면 갤럭시는 아이폰에 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다. 최적화는 하드웨어 기기가 얼마나 소프트웨어를 잘 가동하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애플은 소프트웨어(iOS)와 하드웨어 기기를 모두 함께 만든다. iOS에 맞는 최적의 기기를 제조한다. 반면 갤럭시는 소프트웨어를 구글에 의존한다. 아무리 구글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도, 소프트웨어 제작까지 내재화한 애플을 따라가기는 힘들다. 여전히 20대 남성들 사이에서는 부품 성능 대비 기기 성능에서 갤럭시가 아이폰에 밀린다는 인식이 견고하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이미지다. 기존 세대는 기업 브랜드를 평가할 때,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드는가’를 중점으로 평가했다. 젊은 세대는 다르다. 기업이 얼마나 사회에 공헌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따진다. 즉,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브랜드를 가장 선호한다. 이 분야에서 애플은 삼성전자를 압도한다. 대표적인 예가 친환경 분야다. 애플은 2020년,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고 발표하며 탄소중립 달성 기간을 20년 앞당겼다. 올해 10월에는 생산 과정에서 기존 제품 대비 탄소 배출량을 78%나 줄인 애플워치를 선보였다. 애플 본사뿐 아니라 협력 업체가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까지 감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생산에 사용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애플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공정·친환경 등 가치 소비에 민감한 1020세대로서는 당연히 갤럭시보다 아이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브랜드 평가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기업은 사회 공헌 활동이나 친환경 정책 등을 단순히 ‘좋은 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되려면 바뀌어야 한다. 환경이나 사회 공헌 부문에서 책임감 없이 임하면 젊은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는다. 변화가 없다면 애플 등 해외 브랜드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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