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에서 밉상주로…카카오 ‘카오스’
김범수 사법 리스크 현실로
한때 ‘국민주’로 칭송받던 카카오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시세조종 의혹을 받은 카카오 핵심 경영진이 구속된 데 이어 사정당국 수사 칼날이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로 향하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김범수 창업주가 자칫 ‘불명예 기업인’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내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다. 카카오 실적이 극심한 부진에 빠진 데다 주가도 52주 신저가까지 추락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 게임, 모빌리티 등 주요 사업 수익성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와중에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가 스톡옵션 행사로 수십억원 차익을 챙기는 등 ‘모럴 해저드’까지 부각되면서 주주 불만이 극에 달했다.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는 평가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는 카카오 임원이 구속되면서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10월 19일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배 대표와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했다.
배재현 대표는 카카오그룹 전체 투자를 총괄한 핵심 인물로 손꼽힌다. 김범수 창업자의 오른팔로, 일명 ‘김범수의 남자’로 불렸다. 올 8월부터 카카오그룹 전략을 수립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경영 컨트롤타워 격인 ‘CA협의체’ 수장을 맡아왔다.
배 대표는 2016년 음원 플랫폼 멜론(운영사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부터 올 1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1조2000억원 해외 투자 유치까지 카카오그룹 미래를 좌우하는 ‘빅딜’을 이끌었다. SM 인수전 역시 배 대표가 진두지휘했다. 카카오는 당시 계열사인 카카오엔터와 손잡고 SM 지분 확보에 약 1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월 하이브의 SM 지분 취득을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운 혐의를 받는다. 2400억여원을 투입해 SM 주식 가격을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 매수 가격(12만원)보다 높였다는 것이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카카오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사용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강호중 실장, 이준호 부문장 수사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창끝’은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센터장으로 향한다. 김 센터장은 지난 10월 23일 피의자 신분으로 금융감독원에 출석했다. 앞서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은 지난 8월 김 센터장의 경기도 판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린 위기의 시발점은 SM 인수전에 뛰어든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SM 경영진은 당시 최대주주였던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를 경영에서 배제하면서 카카오에 SM 지분 9%가량을 넘겼다. 그러자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는 SM 인수전에 뛰어든 하이브와 손잡고 곧장 반격에 나섰다. 하이브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보유하던 SM 지분의 80%가량인 14.8%를 인수하고, 당시 9만8500원이었던 SM 지분 25%를 주당 12만원에 공개 매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2월 16일 SM 주가는 전날보다 7.5% 올라 13만1900원까지 뛰었다. 하이브 측은 IBK투자증권 판교점에서 의문의 기타법인이 SM 발행 주식 총수의 2.9%에 달하는 주식을 비정상적으로 대량 매입하는 등 시세를 조종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시세조종 의혹은 두 가지다.
첫째 카카오가 밀접한 관계의 사모펀드를 동원해 SM 주가를 조종했다는 의혹이다. 특수관계인을 통해 의도적으로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액인 12만원보다 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월 16일 SM 주식을 사들인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는 과거 카카오 계열사에 투자한 전력이 있다. 주식 매입 자체를 두고 주가 조작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주식을 사는 과정에서 카카오와 공모했다는 시세조종 의혹이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둘째 카카오가 직접 계열사를 동원해 SM 주식을 사서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하이브의 주식 공개 매수 마감일인 2월 28일 카카오와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SM 주식 약 100만주를 사들였는데, 당일 거래량의 30%에 달했다. 금감원은 카카오가 시세조종에 쓴 금액이 총 2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카카오 측은 “시세조종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주요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SM 인수를 계기로 양 사 인기 아티스트를 앞세워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왔다. 2025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30%로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번 사법 리스크로 사업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카카오 실적도 극도로 부진한 상태다. 카카오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3.7% 급감한 1135억원에 그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카카오 영업이익률 전망치는 5.7%다. 2020년까지만 해도 카카오 영업이익률은 11%에 달했는데 2021년 9.7%, 지난해 8.2%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실적 전망이 암울한 가운데 경영진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져 당분간 카카오 앞날이 캄캄하다는 우려다.
남궁훈 스톡옵션 94억 챙겨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월 말 퇴직하는 남궁훈 전 대표가 스톡옵션 행사로 수십억원 차익을 챙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주 불만이 극에 달했다. 카카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남궁훈 전 대표는 올 상반기 카카오게임즈에 재직하면서 부여받은 카카오 스톡옵션을 1만7000원대 행사가로 두 번에 걸쳐 총 23만7754주를 팔았다. 주당 차익이 약 4만원 수준으로 총 94억3200만원의 행사차익을 거뒀다.
이를 두고 또다시 모럴 해저드 논란이 불거졌다. 남궁 전 대표는 카카오 대표로 재직하며 주가 상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대표로 선임된 지난해 2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대표이사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한다면 그 행사가를 15만원 아래로 설정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주가가 당시의 2배 수준인 15만원이 될 때까지 사실상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인식됐다. 그는 또 사내 게시판에 “카카오 주가가 15만원이 될 때까지 연봉과 인센티브 일체를 보류하며 주가 15만원이 되는 그날까지 최저임금만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궁 전 대표는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했다. 사임과 함께 취임 전 내걸었던 약속은 ‘공언’이 됐다. 스톡옵션 행사로 94억원의 차익을 챙겼고, 대표 사임 후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상근 고문으로 재직하며 2억50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주가가 15만원이 넘을 때까지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던 주주들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모럴 해저드 논란이 처음도 아니다. 2021년 말에는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가 카카오페이 상장 한 달 만에 469억원의 이익을 챙겨 시끌시끌했다. 김기홍 카카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해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두고서도 논란이 뜨겁다. 카카오는 계열사를 줄이고 골목상권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계열사 수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받은 ‘카카오 계열 변동·골목상권 철수 업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카카오 계열사는 총 144개로 2021년 2월(105개)과 비교하면 무려 37.1% 증가한 수치다.
골목상권 철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범수 센터장은 2021년 당시 국감에서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부분이 관여돼 있다면 반드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골목상권 관련 사업을 접은 분야는 카카오모빌리티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와 포유키즈 장난감 도매업 2개뿐이다. 카카오 내부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몸집을 불리는 데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민국 의원은 “카카오는 골목상권 침해 업종 철수나 계열사 감소 공언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수익 극대화만 치중하고 있다. 공정위는 카카오 독과점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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