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열차 뒤집혔던 건 잊어라... 어느 시골마을 축제 분투기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림수진 기자]
▲ 스무 날 가까이 이어지는 축제 기간 모든 하루의 끝은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는 춤판이다. 통상 저녁 열 시쯤 시작된 춤판은 다음 날 자정을 훌쩍 넘기고 새벽을 향해 갈 즈음 마무리된다. 부부끼리, 친구끼리, 이웃끼리, 형제끼리, 혹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어우러져 춤을 춘다. 특별한 실력도 필요 없다. 그저 음악에 맘껏 몸을 흔드는 막춤이면 충분하다. 아, 비가 와도 춤판은 벌어진다. Gobierno Municipal Cuauhtemoc 페이스북 |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 말은 곧, 한 해가 다 갔다는 의미다. 적어도 내가 사는 멕시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그렇다.
10월 8일 시작된 축제는 장장 스무 날 가까이 지속된다. 10월 말쯤 우리 마을 축제가 끝나면 주 전체 축제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12월이다. 이즈음 나라 전체가 축제에 들어간다. 멕시코 신앙의 어머니 격인 과달루페 성모 축일이 12월 12일이다. 성모 축일 앞뒤로 최소 열흘 씩, 나라 전체에 축제가 이어진다. 축제의 연속이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미 지난 9월부터 판매와 함께 장식이 시작되었다. 대형 마트에서도 9월이 되기 전 크리스마스트리 판매 부스가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지난 9월부터 이미 한 해가 다 가버렸음을 알리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나마 아직도 내 마음 어디쯤 쟁여 둔 '한국인의 마인드'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에 9월을 놓치고 이제야 한 해가 다 갔음을 실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단, 지금은 당장 우리 마을 축제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11월에 있을 주 전체 축제나 12월 초 과달루페 성모 축제는 아무래도 너무 먼 미래다. 사람들은 오직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마치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어쩌면 내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통상 새벽 다섯 시 반에 시작되는 축제는 당일을 넘겨 다음 날 새벽 한 시나 두 시쯤 마무리 된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다시 새벽 다섯 시 반, 어김없이 마을 곳곳에서 쏘아 올려지는 축포 소리와 함께 또 다른 하루의 축제가 시작된다. 성당의 종소리는 평소와 달리 큰 종, 작은 종, 중간 종까지 모두 동원된다. 종 줄 잡는 이들이라고 축제에 취하지 않을 리 없어 은은해야 할 종소리가 팔랑팔랑 펄쩍펄쩍 널을 뛴다.
깜깜한 새벽이지만 엄청난 양의 폭죽과 널뛰는 성당의 종소리들이 어우러지면,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다. 폭죽 소리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명들은 마을의 개들이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작정하고 짖는다. 개들뿐이겠는가? 들판에 널린 소들과 말들도 정신없이 울어 젖힌다. 흥에 겨워 울어대는 것인지, 괴로워서 울어대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 스무 날 가까운 축제 기간 내내 마을은 차보다 훨씬 많은 말들이 누비고 다닌다. 축제라면, 아무리 가난한 이들이라도 모자와 셔츠와 청바지와 부츠를 갖춰 말 한 마리 구해 타는 것이 희망사항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나 추석이 되어야 겨우 새 옷 한 벌 장만해 입었던 것처럼 이곳 우리마을에서도 없이 살던 시절 대부분 일년에 딱 한 번 새 옷을 입었는데 그 때가 바로 10월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즈음한 축제였다. Gobierno Municipal Cuauhtemoc 페이스북 |
축제는 스무 날 이상 이어지지만, 유독 더욱 축제 같은 날이 있다. 바로 축제가 시작되는 날과 축제가 끝나는 날이다. 특히 축제가 시작되는 날은 '음악이 들어오는 날entrada música'인데 우리 마을은 물론이요 인근의 모든 마을에서 자칭 타칭 날고 긴다는 악단들이 총출동하여 가장행렬의 흥을 돋운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악단들이 마을 어귀에서 순서를 정해 마을을 통과하는 데만 족히 반나절이 걸린다.
▲ 축제의 첫 날에는 마을 밴드 뿐 아니라 인근 각지에서 자칭타칭 내놓으라 하는 밴드들이 마을로 들어와 가장행렬의 흥을 돋운다. 얼마나 많은 밴드들이 들어오는지 마을 어귀에서부터 시작하여 성당에 이르기까지 통상 반나절을 훌쩍 넘긴다. 각 밴드들은 그들의 무대로 트럭을 동원한다. 트럭이 없으면 트랙터 같은 농기계라도 동원하여 이동식 무대를 꾸민다. |
ⓒ 림수진 |
악단들의 무대는 대형 트럭의 짐칸이다. 아쉬운 대로 트랙터 같은 농기구들도 동원된다. 어디서 그 많은 트럭들을 동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올해도 백여 대 이상의 트럭이 동원되었다. 프로는 프로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트럭을 동원하고 그 위에 무대를 설치한 뒤 온 마을을 가로지르며 기량을 뿜어낸다. 물론, 사람 키보다 한참 큰 대형 스피커들이 빠질 수 없다. 가수와 악단을 실은 트럭들이 지나가면 그 옆에 선 내 심장이 마구 쿵쾅거린다. 감동의 여파라기보다는, 대형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소리의 엄청난 출력이 내 심장을 두들겨 패는 것 같다.
▲ 스무 날 이상 계속되는 축제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첫날 엄청난 규모의 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가장행렬과 춤판이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참여하는 가장행렬의 복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다. Gobierno Municipal Cuauhtemoc 페이스북 |
음악이 있는데 춤이 빠질 수 없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행렬이 하루 종일 행진을 마치고 성당 앞마당에 닿으면 바로 마을 전체가 춤판으로 전환된다. 오랜 세월 연마를 통해 완성된 고급 전통 춤부터 당일 흥에 겨운 막춤까지, 음악이 그렇듯, 춤 또한 각양각색이다.
늦은 밤을 훌쩍 넘어서 다음 날 새벽까지도 축제 첫 날의 여흥은 쉬 가시질 않는다. 춤판의 메카 마을 광장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 우리 집에서도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 흥겨움과 흥분이 그대로 느껴진다. 창이 우웅~ 울릴 정도다. 다음 날 출근 걱정하는 이는 아마도 우리 마을에서 딱 한 명,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자정을 넘겨 오늘이 된 내일은 동이 트기 전까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올지, 아니 올지 모를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는 누가 키우고?
이쯤 되면, '소는 누가 키우고?'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스무 날이니, 아무리 봐도 모두가 정신없이 바빠야 정상일 것 같은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물론 주말 혹은 일과가 끝난 저녁에 잠깐 하는 축제라면 보름 아니라 한 달이라도 그다지 놀랍거나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축제는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그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다. 매일 동이 트기 전 시작된 축제는 다음 날 자정을 훌쩍 넘겨버리는 것이 정상적이고 통상적이다.
▲ 축제는 매일 동이 트기도 전에 시작된다. 어마어마한 폭죽과 흥겨운 음악과 빵과 커피가 준비된다. 폭죽 소리에 잠이 깬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쿵짝쿵짝 음악이 곁들여지고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이어 하루하루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거리미사가 진행되고 길고 긴 하루의 축제가 이어진다. 아, 축제 기간에는 점심도 무료로 제공된다. |
ⓒ 림수진 |
미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혹시, 엄숙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축제기간 거리 미사에 등장하는 음악은 금관악기들과 타악기가 주를 이루는 브라스밴드들이다.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나팔들과 큰북 작은북 심벌즈까지 총동원된다. 거기에 슉슉 불꼬리를 달고 올라가 공중에서 터지는 폭죽소리까지 곁들여진다. 폭죽을 화통에 담아 쏘아 올리는 사람 역시 당당한 밴드 구성원이다. 각 골목마다 어지간하면 밴드 하나쯤은 있어, 자기 구역 미사에 당당하게 등판한다. 혹 해당 구역에 악단이 없다면 이웃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옆 마을까지 가서 악단을 초청해오기도 한다.
깜깜한 새벽 요란한 폭죽을 쏘아 올리고 초청된 악단이 흥을 잔뜩 돋우며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웃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새벽 첫 끼를 해결한다. 별도로 정해진 시간은 없다. 새벽 첫 닭이 울면 모이기 시작하여 먼저 온 사람은 먼저 온대로 나중에 온 사람은 나중에 온대로 폭죽과 음악이 있는 그 곳에서 깜깜한 새벽 하루 첫 끼를 해결한다. 더 자고 싶어도 마을 곳곳에서 엄청난 폭죽 소리와 큰북 작은북까지 포함된 악단의 연주가 이어지니 잠을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흥이 돋고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면, 거리에 나온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한다. 미사는 순례형태다. 모인 곳에서 신부님이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고 이어 확성기를 장착한 성당 트럭과 신부님 뒤를 따라 기도문을 외우며 마을 곳곳을 누비다 성당에 닿는다. 그 즈음 얼추 동이 튼다. 성당에 들어가 다시 또 축제의 하루가 밝았음에 대한 예를 올린다. 축제 기간 내내 어느 하루도 빠질 수 없는 의식이다.
매일 마을 로데오 장에서 말을 탄 채 소를 몰아 잡는 경기가 벌어지고 다양한 가장 행렬이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마을 구역마다, 학교마다, 혹은 농사나 장사 직종마다 조를 짜 가장행렬을 한다.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하게 참여한다. 마을의 동물들도 말부터 소나 나귀까지 다양하게 참여한다. 오후가 되면 초대가수들이 불려와 마을 광장에서 공연을 펼친다. 당연히, 공연의 끝은 언제나 춤판이다.
▲ 명색이 축제인데, 놀이기구가 빠질 수 없다. 겉모습은 그럭저럭 화려한 구색을 갖췄지만 속사정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시절 정도로 거슬러 올라야 할 연식인지라, 놀이기구에 탄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놀이기구들이 삐그덕 삐그덕 지리는 소리에 묻힐 지경이다. |
ⓒ 림수진 |
세월과 함께 늙어버린 놀이기구들은 그 시간 안에 녹아든 구구한 전설을 소환한다. 어느 해 날으는 커피잔을 타다 아무개 구두 끝이 어느 집 지붕 끝을 스쳤다든가, 아니면 청룡열차를 타다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궤도가 무너지는 바람에 탄 사람들이 열차와 함께 땅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든가. 그러거나 말거나, 과거는 과거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이 축제를 만끽하는 것이다.
놀이기구에 오른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보다 연로하신 놀이기구들의 각 마디 관절에서 쏟아지는 비명이 더 호들갑스럽지만 괘념치 않는다. 한 번 더 쏟아진들, 무슨 대수랴. 그 와중에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은 회전목마. 우리 마을 회전목마는 진짜 살아있는 나귀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빙글빙글 돈다. 들판을 유랑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축제 기간에는 영 고생이다.
▲ 대부분 멕시코는 각 마을 혹은 각 지역마다 수호성인을 갖는다. 우리마을 수호 성인은 라파엘 대천사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도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맞춰 이루어진다. 축제의 처음과 끝은 언제나 라파엘 대천사가 장식한다. 축제 첫 날 가장행렬에 라파엘 대천사가 등장했다. 라파엘 대천사는 늘 마을 어린이들 중에 선발한다. Gobierno Municipal Cuauhtemoc 페이스북 |
▲ 축제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마을 광장 가설무대에는 동네가수부터 초청가수까지 딱히 가릴 것 없이 ‘광란’의 음악회가 열린다. 해가 지면 마을 사람들이 곱게 치장하고 마을 광장에 모여 광란의 음악회와 자정을 훌쩍 넘겨 이어지는 흥분의 도가니탕 땐쓰파티를 즐긴다. 하루도 빠짐없이, 스무 날 동안. 축제가 끝난 뒤로도 하루 이틀, 마을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한 위문 공연과 춤판이 벌어진다. Gobierno Municipal Cuauhtemoc 페이스북 |
올 해도 역시나, 어마어마한 축제의 마지막 밤이 이어졌다. 정확히 새벽 네 시 반까지 엄청난 음악과 함성과 웃음과 축포 소리들이 애써 잠들기를 원했던 내 방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10월 25일) 출근 길 지난 밤 광란의 춤판이었던 광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곳곳에 염소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해장으로 반드시 마셔야 하는 것은, 바로 짠 염소젖이다. 참 희한한 조합이지만, 간 밤 숙취는 갓 짠 소젖이나 염소젖을 먹어야 해소가 된다. 염소는 염소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길게 줄을 늘어선 것으로 보아 지난 밤 축제에 안녕을 고하느라 어지간히 마셔댄 모양이다.
축제가 끝났으니 아쉽고 서운할 텐데, 괜찮다. 주변 다른 마을에서 다시 새로운 축제가 이어지니 원정을 다니면 될 일이다.
우문현답
이번 주말 우리 마을이 속한 주 전체의 축제가 시작된다. 축제의 메이저리그쯤 되겠다. 학교 문을 열어보았자 학생들이 올 리가 없으니 우리 학교도 덩달아 방학이다. 일명, 축제방학이다. 가서 쓰고 마시고 놀라고 축제 보너스도 나온다.
주 전체 축제가 끝나고 나면 이번에는 과달루페 성모 축일, 나라 전체가 축제다.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매우 당연하게 세계 전체 축제로 생각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이어 연말,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된다고 축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까지 지나가야 정신 좀 차리고 소 키울 만한 시절이 올까 싶은데, 다시 2월부터 새로운 축제력이 시작된다. 각 마을 축제에 원정을 다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2024년 10월이 되면 다시 우리 마을이 축제의 홈그라운드다.
▲ 동이 트기도 전, 엄청난 폭죽 소리와 흥겨움에 널뛰듯 하는 성당의 종소리와 마을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면, 온 마을 말들과 소들과 개들과 닭들과 염소들과 나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반응한다. 아, 도무지 더 자려 해도 잘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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