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전기차 급제동… 피크아웃? 성장통?

양민철 2023. 11. 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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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글로벌 성장률 63%→49% 밀려
최대 시장 중국, 북미도 뒷걸음질
GM·테슬라 등 투자·공장 건설 연기
국내 배터리업계 직격탄… 주가 급락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기업인 일본 토요타의 전 사장 토요다 아키오 일본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은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위축 현상에 대해 이 같은 관전평을 내놨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재팬 모빌리티 쇼’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단 하나의 해답(전기차)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다”며 “나는 내가 현실이라고 보는 것을 계속 말해왔다”고 강조했다. 토요타 창업주의 증손자로 2009년 사장에 오른 그는 ‘반(反) 전기차’ 기조를 이어오다 결국 전기차 전환 실패의 책임을 지고 올해 초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아키오 회장이 퇴임 1년도 안 돼 “내가 옳았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아키오 회장이 자신만만하게 ‘전기차 시기상조론’을 다시 꺼낸 배경에는 급속하게 퍼지는 ‘피크아웃’(정점) 공포가 자리한다. 최근 전기차와 이차전지 업계에선 시장이 고속 성장을 멈추고 실적이 서서히 뒷걸음질하는 시점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49%로, 1년 전(63%)과 비교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 성장률도 지난 9월까지 32.8% 수준에 머물렀다. 차세대 시장인 북미 역시 폭증하던 전기차 수요가 주춤한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전기차 판매 동력이 떨어지며 하이브리드 차량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쾌속 질주를 이어가던 전기차 기업들도 ‘생산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일본 혼다와의 저가 전기차 공동 생산 계획을 철회하고, 올해 생산 예정이던 전기차 쉐보레 이쿼녹스의 생산 시기도 1년 늦추기로 했다. 포드는 최근 120억 달러(약 16조원) 규모의 전기차 공장 투자 계획을 보류한다고 알렸다. 올해 3분기 기준 포드의 전기차 생산 대수당 손실액은 3만6000달러에 달한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 역시 멕시코에 신규 기가팩토리 건설 계획을 연기하며 “경제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겠다”고 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의 여파는 국내 배터리 업계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던 이차전지 산업도 피크아웃 우려에 직면했다.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연초 이후 폭등세를 기록했던 배터리 셀·소재 기업들의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주요 기업의 고점 대비 하락 폭은 31일 현재 LG에너지솔루션(-36%), 삼성SDI(-44%), 에코프로(-58%) 포스코퓨처엠(-65%) 등이다. 실적 악화 우려와 주가 하락의 악순환 늪에 빠진 모습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배터리 수요가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매출 증가율도 올해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언급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불안 심리와 별개로 투자자에게 알려야 할 정보는 알려야 한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배터리 산업의 장밋빛 전망을 흐리게 하는 단기 악재도 쌓인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과 수요 위축 우려,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 등 부정적인 요소가 늘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침체 분위기가 ‘가격 경쟁’으로 옮겨붙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의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친환경 전환에 속도를 내던 유럽마저 3분기 전기차 판매량이 전 분기 대비 1% 감소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수주 잔고가 1100조원을 돌파했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의 생산 감소 등 전방 수요가 나빠지는 상황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전기차 시장의 난기류는 급성장 산업에서 나타나는 과도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얼리어댑터가 중심이 된 초기 산업 구조에서 대중으로 수요가 확산하기 직전에 겪는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장애물을 고려해 전기차 생산을 줄이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향후 전기차와 이차전지 시장은 ‘규모의 경제’에 도달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적자생존 시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달리는 중국 BYD(21.1%)와 테슬라(13.5%)처럼 원가 경쟁력과 시장 표준을 지배한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 구도의 재편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배터리 업계 역시 중국과의 정면승부 과정에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배터리 3사는 기술 우위를 확보한 삼원계(NCM) 배터리에 이어 CATL 등 중국 기업이 80% 이상을 독식한 LFP 배터리 양산을 공언한 상태다. 여기에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조치 등에 맞서 원재료 조달 능력과 원가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업황 둔화는 피할 수 없겠지만 전기차 전환이란 시대 변화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기술과 원가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며 내실을 다지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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