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알뜰폰' 안기려는 금융당국, 왜 문제냐면
[권태준 기자]
▲ 개소식 열린 알뜰폰 스퀘어 2020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알뜰폰 스퀘어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왼쪽부터),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장, 박천용 KB업무지원본부장이 개소 축하 버튼을 누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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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다른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① 비금융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 그리고 ② 다른 비금융회사를 지배함으로써 비금융업을 간접 수행하는 것을 각각 제한하는 방식으로 규제되고 있다. 은행의 비금융업 직접 수행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 은행법은 고유업무, 부수업무, 겸영업무라는 개념을 정해 놓고, 은행으로 하여금 그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은행의 비금융업 간접 수행을 통제하기 위해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등에 관련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은행의 비금융업 직접 수행을 제한하는 규정, 그 중에서도 부수업무에 관한 것이다. 은행의 부수업무란 말 그대로 은행업무에 부수하는 업무를 말한다(은행법 제27조의2 제1항). 그리고 은행업무 자체의 범위에 대해 은행법에 ▲예금·적금의 수입 또는 유가증권, 그 밖의 채무증서의 발행 ▲자금의 대출 또는 어음의 할인 ▲내국환·외국환으로 규정되어 있다(은행업 제27조 제2항). 따라서 '어떤 일이 은행업에 부수하는 업무인가'를 판단하는 데에 특별히 복잡할 것은 없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0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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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사업은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망을 임차하여 소비자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통신업의 일종이다. 은행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2019년과 2021년 금융위원회(금융위)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금융위는 2019년 알뜰폰 사업에 대해 은행업무와의 연관성이 없어 은행의 부수업무로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전제한 다음, 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따른 규제특례로 인정하여 2년 동안 한시적으로만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2021년 규제특례 기간을 2년 연장하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2023년 4월, 법적으로 더 이상 규제특례 기간을 연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금융위는 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은행의 부수업무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까지만 해도 은행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며 규제특례 기간을 연장해 놓고, 2년 만에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위가 은행의 비금융업을 허용할 예정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입법취지에 반하는 행정해석의 역습
문제는, 금융위가 은행법 입법취지에 반하는 행정해석으로 은산분리 규제체계를 허물어뜨렸다는 데에 있다. 은산분리의 규제체계는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등 법률로써 형성되어 있다. 본래 금융분야의 경우 전문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필요로 하기에, 법률로 직접 모든 사안을 규정하기보다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규범에 구체적인 내용을 위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종종 법률에 위반되는 하위규범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하위법도 아니고 단순히 '행정해석'만으로 상위법에 의해 형성된 규제체계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러면 국회가 앞으로 금융관료들에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통신업이 어떻게 은행업무에 부수하는 업무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은행에게 통신업이 허용된다면, 반대로 허용되지 못할 업무는 또 무엇인가. 조만간 은행 영업점 한켠에서 분양대행이나 택배접수, 자동차 판매나 렌터카 창구를 볼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금융위는 지난해 렌터카상품 판매업무의 경우 '자동차대여사업의 일종이므로 은행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법령해석을 한 바 있다.
▲ 10월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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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본질적인 문제는, 은행에 반드시 통신업을 비롯한 비금융업을 허용해야만 할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가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통화긴축 기조 속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역대급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부쩍 늘어난 가계부채 탓에, 많은 사람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났다.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은행들의 '땅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됐다.
국제결제은행(BIS)에 의하면,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7년 말 98.7%에서 지난해 말 74.8%로 23.9%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69.2%에서 104.5%로 35.3%포인트 증가했다. 국제결제은행 통계에 순수한 의미의 가계부채 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 부채까지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은행들이 가계를 상대로 과도한 대출상품을 판매했고, 금융당국은 폭증하는 가계부채를 묵인하거나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2017년 10월 열린 한국금융학회-한국금융연구원 추계 정책심포지엄에 참석해 "우리나라 은행들은 혁신, 중소기업과 같은 생산적인 분야보다 손쉬운 가계대출이나 담보와 보증 위주의 여신 취급에 안주해 왔다"며 "부채로 인한 자산가격 상승으로 단기적인 호황을 유도하는 금융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최 전 위원장의 경고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 은행들에 필요한 것은 가계대출이 아니라, 기업가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이다. 자본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성장가능성이 충분한 기업가를 발굴하고, 그에게 자본을 제공하여 건전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부와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은행에게 느닷없이 알뜰폰을 허용하겠다고 하니, 금융당국은 우리나라 은행을 대체 어디로 보내려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은 비금융산업 분야에서 시장의 다른 사업자들과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은행과 대등한 지위에서 경쟁할 만한 사업자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은행의 비금융업 허용은 공정경쟁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정책목표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역대 은행연합회장 13명 중 9명이 금융관료 출신이라고 한다. 금융당국의 은행 알뜰폰 허용 발표가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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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오기형 의원실 보좌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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