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3분기 역성장…"같은 고금리인데 미국과 격차난다" 왜
고물가‧고금리 국면이 길어지면서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서로 갈림길에 섰다. 유럽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부진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침체 우려가 커지는 반면 미국은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두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1일(현지시간)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올해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1%(속보치)를 기록했다. 유로존이 역성장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분기 이후 처음이다. 특히 유로존 경제 규모 1위인 독일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1% 감소했다. 경제 규모 2위인 프랑스는 3분기 성장률이 이전 분기보다 둔화(0.6%→0.1%)했다. AP통신은 "유로존 경제성장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고강도 긴축 효과로 물가 상승 폭은 작아졌다. 유로존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2.9%(속보치) 올랐다. 2021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에너지 가격 하락(-11.1%)과 기저효과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물가의 장기적인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4.2%)는 지난해 7월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작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7월부터 기준금리를 10회 연속 인상한 효과로 풀이된다. ECB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동결(연 4.5%)했다.
이날 지표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미국과 유럽 경제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은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2%(연율 4.9%)를 기록했다. 탄탄한 고용·소비가 경제를 뒷받침했다. WSJ은 "유로존의 경제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보다 뒤처졌다"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유럽 경제가 흔들리는 결정적인 원인은 고물가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올랐다. ING 은행의 버트 콜리 유로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위기는 유럽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입혔다"고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식량을 비롯한 전반적인 물가도 뛰었다.
고물가 상황에서 임금은 더디게 오르면서 유로존의 소비는 부진했다. 유로존의 올해 1~8월 소매판매 월간 평균은 지난해 1월보다 7.5% 감소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1.8% 감소에 그쳤다. 해외 수요 역시 취약했다. 미·중 갈등 같은 지정학적 여건과 기대에 못 미친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유럽의 수출이 어려웠다는 진단이다.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P글로벌이 집계한 함부르크상업은행(HCOB) 유로존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0월 46.5를 기록했다. 2020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기 선행지표인 PMI는 50을 기준으로 이를 웃돌면 경기 확장, 밑돌면 위축을 뜻한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로리 페네시는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정체된 4분기 성장 전망에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중동 전쟁이 국제유가 상승 →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이에 관해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딧 뱅크의 에릭 F. 닐슨 유니크 경제 고문은 "지난 15년간 미국에 뒤처졌던 우리는 이제 (ECB의) 정책 실수로 1인당 소득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다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경기는 올해 연말까지 약세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물가 상승세가 더욱 둔화하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이 회복되고, 수출 수요도 치솟아 추후 강세로 전환할 수 있다"고 봤다. 시장은 물가 둔화세와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ECB가 금리를 더 높이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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