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지방시대 외쳤는데, 여당은 '김포 서울 편입'?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1월 1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
ⓒ 연합뉴스 |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특별시 편입'은 교육 문제를 포함해서 중차대한 국가적 의제이기 때문에, 선거공학적 판단이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심도 있는 검토와 국민적 토론을 통해서 결정돼야 할 것입니다.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발표가 현실화하면, 김포시의 학교들도 서울시교육청 관할이 되겠지요. 김포에 이어, 하남, 구리, 과천, 분당 등의 서울 편입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대한민국의 행정지도를 바꿀 수 있는 확산성을 가진 주제입니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편입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국토정책,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 등 다양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는 국가적 의제이며, 교육을 포함한 시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의제입니다.
갑작스러운 '김포 서울 편입론'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 조율과 숙의 절차 없이 갑작스레 발표된 데 대해 깊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아울러 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 지역 공동화 등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해야 할 국토 계획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당의 득표 계산에 따라 발표됐다면,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정책의 공론화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검토 없이 이른바 '선거 포퓰리즘' 차원에서 중대한 국가 의제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염려합니다.
돌이켜 보면, 중요한 국토 계획이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에 따라 갑작스럽게 발표됐던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현 야당이 집권했던 시기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이 서로 싸우면서 닮아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상대가 잘못했으니, 나도 똑같이 잘못하겠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한 차원 높은 해법을 찾아내는 게 정치와 행정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중대한 국토 계획 전환은 상당히 긴 기간 '군불 때듯이'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같은 과정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적대적 진영 논리를 넘어선 '공존의 교육'을 서울시민께 약속드리고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교육과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는 상대방을 꺾기 위한 단기적인 표 계산의 논리로는 결코 풀 수 없습니다. 연금 개혁,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우리가 마주한 사회 문제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선거공학적 접근?... 그래선 안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인구 감소와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에 학교가 응전하는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 역시 진영대립을 넘어선 공론장에서 함께 숙의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중차대한 국가적 의제가 선거공학적 판단이나 진영대립의 문제로 설정되고 추진돼선 안 됩니다.
정책과 행정에서 정치적 고려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행정구역 체제를 금과옥조로 여겨야 한다는 말 역시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정치의 목적이 한국 사회의 더 나은 미래에 있다면, 중요 정책 발표에 앞서 긴 시야로 숙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입니다.
여당의 이번 발표 이후 경로를 생각해 보면, 제가 우려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안에 대해 여당이 찬성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경우, 이는 긴 시야로 숙의하는 과정이 빠진 정치 쟁점이 될 것입니다. 만약 야당 역시 선거 득표의 관점에서 반대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찬성하는 경우, 이 역시 중요한 국가 의제에 대한 충분한 국민적 토론 및 검토가 없었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 문제가 선거를 앞둔 여야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서만 논의되는 데 대해 반대합니다.
오히려 내년 선거 이후에 국민적 공론의 주제로 붙여져서 긴 호흡의 토론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 9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개최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김포의 서울 편입이 가능하다면, 하남, 구리, 과천, 분당의 서울 편입을 반대할 근거와 명분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울공화국' '수도권 블랙홀' 등의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수도권이 공룡처럼 팽창해 지방인구를 흡입하고 그 결과 지방소멸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상식이 돼 있습니다.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목표는 여야를 넘는 공통의 의제였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부산에서 '지방 시대'를 선포하며 국토의 균형적 발전, 분권형 국가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서울공화국'을 극복하자는 공감대는 현 정부 역시 갖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도 김포의 서울시 편입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서울의 인구가 감소하니, 광역화를 통해서 서울을 확대하자는 주장 역시 기존 논의 흐름과 배치됩니다. 물론 외국 사례를 참조해 서울을 광역화하자는 논의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논의는 그간의 공감대와 토론 결과의 바탕 위에서 긴 호흡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엔 국가가 특정 의제를 억누르고 그래서 시민사회가 오히려 돌진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투쟁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습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됐습니다. '어느덧 선진국' 혹은 '어쩌다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이제 '어엿한 선진국'이 되려면,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국가 의제에 대해선 열린 자세로 토론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합니다.
저는 여당의 이번 발표를 단순히 반대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우려가 깊은 편입니다. 그러나 김포의 서울시 편입이 꼭 불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위험한 것은 김포의 서울시 편입 그 자체가 아니라 숙의 없이 단정하는 일입니다. 긴 호흡의 진지한 검토가 있다면 결론이 어떻게 나오건, 혹여 있을 수 있는 부작용 역시 방지할 수 있는 고민이 포함돼 있을 것입니다.
이번 발표가 서울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벌써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서울 교육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로서는 김포시가 서울시에 편입될 경우, 상대적으로 대도시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서울의 학교 구성이 중기적으론 일종의 '도농복합형 교육도시'로 전환될 텐데, 그 변화에 따른 영향과 결과를 고민하는 정도입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0월 27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 씨 유족 학교발전기금 기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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