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수술 몰래 녹음한 40대 '유죄'…그 파일 올린 변호사도 실형

김정연 2023. 11. 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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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전경. 뉴스1

성형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 녹음기를 숨겨 의료진의 대화를 녹음한 40대 남성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녹음파일을 유튜브에 공개한 변호사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강두례)는 지난달 26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A(41)씨에게 징역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손 모(39) 변호사에게는 징역 1년 실형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코 수술 들어가며 녹음기 숨겨… 의료진 3명 목소리 녹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대해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2022년 4월 1일자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쳐
2021년 6월 코 성형수술을 받으러 간 A씨는 자신이 마취된 이후의 수술 상황을 알고 싶어서 USB 형태의 녹음기를 몸에 숨겨 수술방에 들어갔다. 녹음기에는 집도의였던 B씨와 간호사 C씨, 또 다른 성형외과 전문의 D씨의 목소리가 담겼다. A씨는 대리수술 의혹을 제기하며 사기죄 등으로 의료진을 고소했지만, 경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이 나자 손 변호사를 찾아갔다.

손 변호사는 ‘성형외과와 싸우는 법’을 안내하는 변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관련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손 변호사는 A씨의 녹음파일 중 일부를 포함해 ‘[음성녹음 증거 포함] 충격적인 #성형외과 #대리수술 #유령수술 수술실 현장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네이버 카페 및 성형 관련 애플리케이션에서 이 유튜브 영상 링크를 공유하며 해당 성형외과의 초성을 함께 쓰기도 했다.

그러다 A씨와 손 변호사는 나란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통신비밀보호법 3조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16조에 따르면 이 대화의 내용을 공개‧누설한 사람도 처벌받는다. A씨가 마취된 상태에서 녹음한 의료진의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로,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였던 A씨가 녹음을 한 것이 불법이고 손 변호사의 공개행위도 불법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A씨는 녹음파일에 ‘아아아’ ‘아프다’ 등 신음소리를 내거나, 간호사가 ‘환자분, 이러시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소리 등을 근거로 자신도 참여한 대화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마취 상태인 A씨가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대화했다”는 의료진들의 진술에 무게를 뒀다.

A씨는 “수술실 CCTV 의무화 전이라, 혹 발생할지도 모르는 성형 부작용이나 대리수술 등 분쟁에 대한 자구책으로 녹음을 한 것”이라며 정당한 방어행위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녹음 당시 대리수술‧성형 부작용 등을 염려할만한 정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CCTV 설치 의무화 법령 시행 이후에도, 동의를 받지 않은 녹음행위는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손 변호사는 이에 더해 “대리수술 의혹이 있는 부분만 최소한으로, 공익 목적으로 공개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주장도 폈지만 녹음파일 및 다른 증거에서 대리수술 사정이 확인되지 않아 기각됐다.

자료 법원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신청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26일 오전 시작된 재판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A씨와 손 변호사 모두 유죄라고 평결했다. A씨에 대해선 집행유예 의견이 6명, 손 변호사에 대해선 실형 의견이 6명이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이 수술 이후 부작용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볼 자료는 전혀 제출되지 않았고, 손해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다”며 “수술 뒤 8개월, 의료법 위반 고소한 지 6개월 지난 뒤에 공개를 긴급하게 했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손 변호사에 대해 “자신이 수임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상대방인 피해자들이 피고인 A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도록 압박하거나, 변호사인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 짚은 뒤 “법률전문가인데도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의료분쟁조정, 소송 등 분쟁해결을 위해 마련된 적법절차를 전혀 시도해보지 않고 녹음을 공개했다”며 지적했다.

손 변호사가 2022년 4월 1일 최초 영상 업로드 후 여러 건의 추가 영상과 글을 올리고, 1인시위 등을 한 데 대해서도 “비난가능성이 크다”며 “법정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행위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진술한 데 비추어 재범의 위험성도 높아보인다”고 말하며 실형을 선고했다.

A씨 측이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사건 피해자인 의료진은 A씨와 손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도 청구해, 오는 7일과 29일 변론기일이 진행된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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