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주여, 가을입니다
저는 한 그루의 나무도 색칠하거나 물을 주거나 돌봐준 일이 없는데, 무성하고 청초하던 잎들이 저렇게 황홀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 전체를 주님께 드릴 수 있다는 파닥거림이 저들의 겉모습에서 완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자란 고향의 가을과 똑같은 가을이 손가락 걸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연기처럼, 아침이슬처럼 어제의 꿈이 사라져버리지 않고 계절마다 다시 소생합니다. 부활하여 만나는 이 신비로움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 신기해서 문득 발을 멈추곤 합니다.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뛰쳐나오듯이 사면이 푸른 물결에 쌓인 울창한 나무 숲속에서 저를 끌어내어 주신 주님, 작은 어깨에 전천후 날개를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저를 옮겨주시고 각양각색 수많은 기화요초를 바라보고 음미할 수 있는 동심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꿈꾸던 것보다 수만 배 더 볼 수 있도록 지경을 넓혀주셨습니다. 넓은 세상에서 무르익은 가을 냄새에 취하고 새들의 노랫소리와 가을바람 소리를 음미할 수 있는 오늘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 이로이다.”(시 50:11)
생명의 찬송 소리에 설레는 가슴, 감탄사 없이 저 황홀함을 언어로 몸짓으로 어찌 재현할 수 있을까요? 청청한 가을 하늘에 출렁이는 이야기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고 주님의 솜씨를 헤아리는 서사시로만 세상은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합니다. 수많은 감동의 시어들을 채워두기에도 이 지구의 공간은 모자랄 것입니다.
어제까지 불볕으로 뜨겁던 대지, 입추의 등에 업혀 온 가을은 무작정 내 마음을 열고 들어옵니다. 천지를 아우르는 대자연을 스스로 숨 쉬며 운행되도록 지휘하시는 아버지의 능력과 권능을 찬양 드립니다.
저 같은 것이 어쩌다 이런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저도 그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날마다 암기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어 말씀 암송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소서.
날마다 꿀맛 같은 주님 말씀을 물먹는 솜처럼 암기할 수 있도록 저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말씀을 암송하는 제 목소리를 기뻐하소서. 그 어떤 것보다 가슴 벅차게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찬양하고 싶습니다. 이 감동적인 시간이 행복임을 너무 늦게 깨달아 후회합니다. 일 중독에 빠져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결국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이었는데 긴 세월을 낭비했다는 자괴감에 깊은 밤 고뇌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주여, 저속하고 힘없는 영혼이지만 머리 조아려 기도합니다. 이 생명 다하기까지 주님 말씀 안에서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메신저로 살고 싶습니다.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지혜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주께서 주신 이 모든 은혜에 무엇으로 저는 보답하리이까.(시 116:12) 지난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세상의 고난이 제게 얼마나 유익하였는지 되돌아봅니다. 비록 외롭고 힘든 나날이었지만 독수리 날개 침 같은 새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주님이 내 팔을 잡아주심입니다.
메마른 삶에 생령을 불어넣어 저를 소생시킨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나의 생명이신 주님, 저는 이제 온전히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저를 담그고 날마다 생명수를 마시며 살기 원합니다. 가을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제 인생에 가장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어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존재가 되기 원합니다. 저를 혼자 두지 마시고 하루 이십 네 시간을 성령님의 간섭을 받으며 살기 원합니다.
나는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헤아려보며 굳게 닫힌 마음을 풀어헤칩니다. 주님 충만히 부어주소서 주신 사랑의 열쇠를 쥐고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 주님의 놀라우신 부활의 능력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저의 졸필을 읽는 모든 이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하여 주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녀들로 살게 하소서. 이 세상 사는 동안도 아름다운 자연을 충만히 누리며 날마다 시와 찬미로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송축하는 황금의 가을을 살게 하소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창조의 흔적>
내 고향 거금도
금장리 해변가에는
그림 같은 검은색 몽돌과
하얀색 몽돌밭이 있다
들물 때는 맨몸으로 살갗 부비며
애써 무엇을 더 씻으려는지
날물이면 태양을 벗 삼아
서사시 써 내리는 바다
언어도 없고 지휘자 없어도
몽돌은 침묵으로 교감한다
바다를 두른 기묘한 해안은
천둥벼락이 이뤄 낸 신비일까
부딪혀 깎이고 화상 입어
짠물에 수만 년 담금질 해 온
몽돌은 외유내강의 산물인가
몽돌 위에 앉아 본다
내면에 출렁이는 번뇌
내 영혼 짓눌러 담금질한다
몽돌처럼 유연한 곡선이 되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한 방울 물기조차 머물 곳 없는
몽돌은 창조의 스티그마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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