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정지영 감독 “사회에 대한 분노도 삶의 원동력”

임세정 2023. 11. 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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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에서 발생한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다뤘다.

정 감독은 "모든 사람이 아는 내용이라는 점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미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보게끔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며 "내용에 깊이가 있어야 하고 사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관객들에게 깨달음을 전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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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등 실제 사건 모티브 영화에 천착
영화 연출 40주년…“꼰대 되지 않는 비결은 철이 안 들어서”
영화 '소년들' 스틸사진. CJ ENM 제공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수사망은 인근에 사는 세 명의 소년으로 좁혀지고, 아이들은 경찰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한 뒤 수감된다.

이듬해 완주경찰서에 반장으로 부임한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은 진범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 황 반장은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린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유준상)의 방해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황 반장은 좌천된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어느 날 삼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윤미숙(진경)과 소년들이 황 반장을 찾아온다. 공권력에 의해 삶이 망가진 소년들은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용기를 낸다.

정지영 감독. CJ ENM 제공

정지영 감독의 영화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에서 발생한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다뤘다.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조명한 ‘부러진 화살’(2012),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머니’(2019)를 잇는 ‘실화극 3부작’의 세 번째 영화다. 지난 18일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 개막작으로 최초 공개됐고 1일 국내 개봉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들여다 볼 수 있기에 실화에 천착한다.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제는 어땠고 내일은 어떻게 할지 점검하면서 사는 게 적극적인 삶”이라며 “시대가 가는대로 피동적으로 사는 건 좋은 삶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 CJ ENM 제공

영화의 서사를 주도하는 인물인 황준철 반장은 배우 설경구가 연기했다. 설경구를 떠올린 이유를 묻자 정 감독은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가려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싸우는 베짱이 있고 거침 없이 행동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사람이 필요했다”며 “젊을 때 ‘강철중’(2008) 같은 사람이 나이 들고 반장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고 답했다.

잘 알려진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고민되는 지점도 있었다. 정 감독은 “모든 사람이 아는 내용이라는 점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미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보게끔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며 “내용에 깊이가 있어야 하고 사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관객들에게 깨달음을 전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허구적 요소들을 더했다. 유준상이 연기한 경찰 최우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사건의 본질을 유지하되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새 캐릭터도 넣었다”며 “사람들이 나를 두고 ‘한국의 켄 로치’라고도 하지만 난 다르다. 켄 로치가 팩트에 다가간다면 난 팩트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되도록 극적 장치를 넣는다”고 강조했다.

영화 '소년들' 스틸사진. CJ ENM 제공

그는 올해 영화 인생 4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9월 서울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에서 회고전’을 진행했고,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정 감독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 감독은 “과거보단 앞으로 할 일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됐다”며 “난 사실 허무주의자다. ‘이 사회가 과연 나아질까’하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데 영화를 통해 그걸 극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영화를 만들면서 비전을 그리고 삶의 원동력을 얻는 게 아닌가 한다. 사회에 대한 분노도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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