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아이 간병에 지친 가족에게… 단비 같은 휴식을
국내 최초 중증 환아와 가족 위한 독립형 단기 돌봄 의료시설
뇌에 산소 공급이 안돼 신경이 손상된 ‘저산소성 뇌병변’을 갖고 태어난 다섯 살 민수(가명)는 집에서 하루 종일 인공호흡기를 낀 채 누워 지낸다. 엄마의 24시간 돌봄이 필요하다. 밤낮 없이 민수 곁을 지켜야 하는 엄마는 “개인의 삶, 감히 생각지도 않고 있다. 다만 큰 아이(민수의 형)도 어리다 보니까, 그 아이한테 신경을 못써 줘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이들 가족에게 1일 개소한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일명 도토리하우스)는 그야말로 단비와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중증 환아와 가족을 위한 독립형 단기 돌봄 의료시설이다. 지난 31일 민수를 입소시키고 여유가 생긴 엄마는 “큰 아이가 아직 놀이동산에 못 가봐서 데려가고 싶고 ‘엄마, 나도 캠핑 진짜 가보고 싶다’고 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보람있게 쓰고 싶다”며 오랫만에 웃음을 찾았다.
민수처럼 인공호흡기 등 기계에 의존해 24시간 간병 돌봄이 필요한 중증의 소아·청소년 환자는 전국적으로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지금껏 국내에는 이들의 단기 입원 치료와 돌봄이 가능한 의료시설이 전무했다. 이 때문에 환아의 가족은 퇴원 후에도 가정에서 잠시의 쉼도 없이 의료 돌봄을 계속해야 했다. 이들 가족에게는 단 하루라도 아픈 아이를 맡기고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2018년 보건복지부 연구에 의하면 중증 소아 가족의 82.9%가 최근 1년간 사흘 이상 휴식을 갖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82.4%였다.
이에 며칠만이라도 환아를 맡아 안전하게 돌봄으로써 가족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기회를 주고 나아가 돌봄이 지속되도록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마련됐다. 서울대병원과 복지부, 넥슨 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인근에 연면적 997㎡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세운 것이다. 넥슨 재단의 기부금 100억원과 국고 지원 25억원으로 착공 5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센터는 총 16병상(2인실 4개, 4인실 2개)의 입원실과 놀이 치료실, 상담실 등을 갖췄다. 칠곡 경북대병원이 병원 내에 1개 입원실(4개 병상)을 중증 소아 단기 입원‧돌봄 시설로 운영을 계획 중이나, 이처럼 독립된 건물에 마련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센터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5명이 돌아가면서 24시간 상주하고 중증 환아 돌봄에 전문성을 가진 간호사들이 ‘보호자 없는’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장인 김민선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한 아이들의 부모가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휴식과 회복의 기회를 갖도록 가정을 방문하거나 단기간 기관에 위탁하는 ‘단기 휴식 서비스(Respite Care)’를 제공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런 모델이 다른 지역에도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원 대상은 만 24세 이하 소아·청소년이면서 자발적 이동 어려움, 인공호흡기‧산소흡입 등 의료적 요구 필요, 급성기 질환이 없는 안정 상태 등 3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해당 환자 중 사전 외래 진료를 통해 적합 판정을 받고 서울대어린이병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이용 가능하다. 서울대병원 이용자 외 다른 의료기관 의뢰 환자도 입원할 수 있다. 입원은 1회 7박8일 이내, 연간 5회 총 20박21일까지 가능하다. 환자 부담은 총 의료비의 5%다.
김 센터장은 “지난 6월부터 사전 외래 진료를 진행해 지금까지 입원 날짜를 확정한 것은 89건”이라며 “불가피하게 대기가 길어지는 상황이 되면 의학적 중증도와 아이를 함께 돌봐 줄 다른 가족이 있는 지 등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해 입원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김정욱 넥슨 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정욱 넥슨 재단 이사장은 “센터 개소가 전국의 중증 질환 환아들과 지속되는 간병으로 지친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도 “의료 돌봄 시설 부재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이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운영에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지만, 국가중앙병원으로서 공공 의료의 지평을 넓혀나가겠다”면서 “정부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가(진료 대가)를 만들어 줘서 일부 비용 보전이 되고 부족한 부분은 기부금이나 후원금으로 꾸려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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