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문학 권위자, 단가 버릴까 고민하던 韓 시인에 용기”
일본 단가의 대가 고 손호연 시인의 딸
100주년 맞아 나카니시 스스무에 평화문학상 수여
“어머니는 어려서 학교에서 한국어를 쓰지 못했어요. 해방 후에는 또 한국어만 써야 했죠. 그때 매일 정도가 아니라 매 순간 고민을 하셨어요. 단가를 버려야 하나.”
시인 손호연(1923~2003)은 일본의 전통시인 단가(短歌)의 명인이었다. 단가는 5ㆍ7ㆍ5ㆍ7ㆍ7음절씩 모두 31자로 이뤄진 시이며 하이쿠와 함께 일본 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장르다. 일제 강점기에 도쿄에서 단가의 대가인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를 사사했다. 1997년 아오모리 현에는 그의 시비(詩碑)가 섰다. 2005년 5월 한ㆍ일 정상회담에서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회담 도중에 손씨의 단가를 읊었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어라’.
그의 딸 이승신 시인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100주년, 20주기를 기려 손호연 평화문학상을 제정하고, 시비를 세운다”고 했다. 평화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나카니시 스스무(中西 進ㆍ94). 일본의 전통문학 연구 권위자다. 나카니시는 고대 일본의 시와 노래를 모은 『만엽집』 연구의 일인자다. 2019년 나루히토가 즉위하며 새로 정한 연호 레이와(令和)가 『만엽집』에서 나왔고, 이를 나카니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가 나카니시와 어머니의 일화를 들려줬다. “어머니가 문학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때에 모국어를 못 썼어요. 그때 일본에서 단가를 배우셨죠. 귀국해 무학여고 교사를 하면서도 매일 일기처럼 단가를 썼는데 해방 후에는 또 한국어만 써야 했던 거예요.” 해방 후 일본어로 된 시를 계속 쓰던 손 시인은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에게 용기를 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했던 분이었어요.”
손 시인은 나카니시를 만났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때 나카니시는 “당장 부여의 백마강을 보고 와서 시를 계속 쓰라”고 조언했다 한다. “1400년 전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에 넘어온 백제인들이 탄생시킨 장르가 단가”라고 말해주면서다. 나카니시는 『만엽집』 의 가인 중 다수가 백제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고, 단가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본다. 이씨는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싸우지 마라’ ‘가까운 이웃과 다투지 마라’는 시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 시인은 평생 3000편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이씨는 “어머니는 그렇게 평화의 상징이 되셨다. 앞으로도 평화문학상을 평화와 관련되고 문학성이 깊은 분들에게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필운동 모녀시인의집에서 7일 오전 11시 시비 건립식을 열고, 같은 날 오후 2시 30분부터 프레스센터에서 ‘손호연 시인의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국제문학포럼을 개최한다. 새로 발간하는 어머니의 시집 2권을 헌정하고 평화문학상을 시상하는 순서도 있다. 이씨는 시비에 평화를 노래하는 어머니의 시를 골라 넣었다. ‘동아시아 끝 나라에 살아온 나, 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하네’라는 시 등 총 두 편이다. 한글, 일본어, 영어의 세 언어로 시를 새긴다. “시는 그릇이고, 거기에 담긴 어머니의 정신은 평화다. 그 사랑의 시심과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한 정신을 기리려 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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