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점유율 1%, '폐관' 걱정하는 영화관 여기 또 있습니다
[김상목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예술분야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현장감이 전제되어야 하는 수많은 공연행사들이 강제 활동중단에 처해져야 했다. 대형 극장의 경우 좌석 사이를 이격하는 것으로 억지로 문을 여는 타협안이라도 가능했지만 관객과 공연자가 면 대 면 접촉하는 현장성이 필수였던 소규모 극장공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얼굴을 맞대는 생동감이 역으로 치명타가 된 셈이다. 그렇게 소극장 위주 연극이나 인디음악 공연들이 별다른 보상책도 고려되지 않은 채 정지상태를 맞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자 그저 무작정 손을 놓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대응해 (부족하나마) 타개책으로 시도된 게 온라인 송출형태의 공연이었다. 안방의 모니터로도 관람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현장감이 모자란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그 외에도 생존을 위한 다양한 모색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긴 해도) 어떻게든 상황을 돌파하고자 다양한 경로로 모색되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경우에는 신작 개봉 외에 상대적으로 선전홍보 비용을 절감하는 재개봉작 비중을 높이는 건 물론, 유휴 상영관을 다양한 지역/공동체 모임들에게 대관하거나 공연/전시/스포츠 중계 등으로 다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문득 한 가지 진실이 몇몇에게 떠올려졌다. 사실 영화 상영에만 특화된 극장이라는 개념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 19세기 말 최초의 영화는 당연히 전용 상영관이 아닌 곳에서 공개되었다. 그 시절 극장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나 공연 위주였고 영화가 대중예술로서 빠르게 입지를 확장하면서 기존의 수요를 잠식한 나머지 극장=영화관으로 대중의 인식에 자리매김하게 된 것일 뿐인 것. 그래서 비록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 강제한 것이긴 해도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다양한 활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은 '오래된 전통'을 재발견한 것에 불과한 셈이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프로젝트는 그런 발상의 한 첨단에 속한 작업이다.
▲ "버텨내고 존재하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엣나인필름 |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팬데믹 시기에 대응하는 도전의 산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한할 정도로 절묘하게 아귀가 들어맞은 프로젝트가 된 경우에 속한다. 광주 출신 인디포크 뮤지션인 최고은은 고향에서 '홈 커밍' 프로젝트를 2019년부터 진행해 왔다. 고향방문 겸 동네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다. 3회째를 맞이한 프로젝트는 하필 중간에 맞이한 역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양한 융-복합에 도전한 끝에 일정한 결과를 도출하기에 이른다. 그 결실이 1차로는 미디어 융합 라이브 형태로, 2차로는 음악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기획자인 뮤지션 최고은이 어릴 적부터 출입하던 광주의 오랜 극장, 그 이름마저 '광주극장'인 공간 요소요소를 무대로 활용한다. 마치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일상의 공간이지만 예술과는 무관하게 보이던 우리 곁의 장소들이 순식간에 공연장이 되었다가 사라지는 방식이다. 관객은 이를 통해 극장이라는 장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기획자 최고은의 권유에 응한 뮤지션들은 차례로 본인들이 선택한 극장 내 공간에 자리한 채 개성 넘치는 곡조를 뽑아낸다. 모든 파트는 스튜디오에서의 후반 추가가 아니라 오로지 공연 현장의 사운드만 기록한, '생짜 라이브' 형태로 행해졌다. 그 공연 앞뒤로 간단한 인터뷰와 스케치가 연결되는 식으로 옴니버스 공연은 차례로 계속된다. 대개 음악 다큐멘터리라면 음악인의 인생 경력과 공연실황이 연결되는 식으로 진행되게 마련이지만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통상의 유형과는 좀 다르다. '영화'로서 출발하기보다는 온라인 공연 기획에 좀 더 저울추가 기우는 시작점을 갖다 보니 말 그대로 공연장에 앉아서 무대를 지켜보는 체험에 가깝다.
영상이 가미된 개성파 뮤지션들의 옴니버스 앨범처럼
순서는 다음과 같다.
김일두는 <뜨거운 불>을 특유의 거칠고 탁하지만 뇌리에 꽂히는 음색으로 2층 복도에서 오프닝을 열어젖힌다. 다음으로는 김사월 의 목소리로 <확률(Ray)>이 1.5층 계단에서 흘러나온다. 각자 자신이 처음 본 영화나 음악에 대한 경험과 소신을 피력하지만 김사월의 인터뷰는 가장 독립예술영화 관객들에게 익숙하고 호소력 있는 내용일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영향 받은 감독들로 에릭 로메르와 짐 자무시를 언급한다. 에릭 로메르는 현실에서 떠올리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들로, 짐 자무시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찰나를 묘사하는 게 좋았다고 한다. 우리가 단조로운 일상에서 음악과 영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에 맞춰 어떤 영화의 단상을 농축하듯 특별히 만든 자작곡의 유래를 설명하는 그의 입담을 듣다 보면 손뼉을 절로 칠 법하다.
김사월과 교대하듯 스테이지를 이어받는 이는 같은 여성 포크 뮤지션 곽푸른하늘이다. <살아있기 좋은 날>을 부르는 그의 무대는 매표소다. 매표소 창구에 누군가 두고 간 '봉봉'을 마시는 풍경은 멀티플렉스의 번잡한 창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이 통하는 풍경일 테다. 그 다음 순서는 분위기를 확 바꿔 라틴 풍 인디 록을 펼치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이 등장해 <악어떼>를 상영관을 무대삼아 선보인다. 밴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온 유쾌한 익살은 만담을 통해, 경쾌하지만 신랄한 곡조는 무대에서 발휘된다. 상업주의에 항상 위태로운 대중문화의 초상을 고스란히 옮긴 듯 가사가 착착 감긴다.
이번에는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 기타리스트 이자원의 차례다. 연주곡 특성상 둘 사이의 대화 비중이 조금 더 높다. 그들의 만담 사이로 <마지막 만담> 연주가 영사실에서 흘러나온다. 만담이라는 키워드가 선율로 전해져온다. 다음 주자는 포크 뮤지션 정우다. 강렬한 음색이 귀에 꽂히는 <철의 삶>은 출입문 옆에서 쩌렁쩌렁하게 마치 관객을 불러 모으듯 울려 퍼진다. 마거릿 대처와는 정반대이지만 강력한 삶의 신조가 뇌리에 새겨진다.
바통을 이어받아 아마도이자람밴드 가 <산다>를 사무실 내에서 공연하며 포효한다. 낡고 쇠락한 극장이지만 살아서 꿈틀댄다는 신호처럼 들리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기획총괄이라 할 최고은이 주소영과 함께 <축제>를 미술실에서 공연한다. 공연의 헤드라이너까지는 아니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실은 최고은 & 주소영의 공연 이전에 인터뷰 중심으로 구성된 하나의 챕터가 숨어 있긴 하다. 1993년부터 광주극장에서 회화로 영화소개 포스터를 그려온 박태규 화백의 인터뷰다. 해설이 크게 포함되지 않은 구성이지만 왜 기획자가 광주극장이란 공간에 애착을 갖고 이 기획을 통해 극장을 소개하려 했는지를 대신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맡는다. 화백의 인터뷰를 통해 광주라는 공간의 역사성, 그리고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극장의 벽화 같은 영화 포스터와 화백이 대학시절 몸담았던 민중미술 걸개그림의 연속성이 심심한 척 하지만 진하게 묻어나온다.
▲ "버텨내고 존재하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엣나인필름 |
후반으로 갈수록 인디음악 뮤지션이라는 공통성 외에는 크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처럼 다가왔던 일련의 개별 공연들이 하나의 청사진 안에서 원심력으로 묶여 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저 친한 인디 뮤지션들 불러모은 단순한 공연 조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게 될 관객들에게 하나의 서사를 전달하려는 기획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굳이 품을 들여 공연을 추진한 목적이 절감되는 순간이다. 역시 세상은 넓고 아이디어는 넘쳐나는 법이다. 그렇게 1시간 조금 넘는 온라인 공연을 감상하고 나니 자연스레 '앙코르!' 외치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마치 신기루처럼 공연은 끝나버렸다. 언뜻 차가운 느낌의 극장만 남아버린 채로. 그렇다면 공연과 대담을 접하면서 들었던 기운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영화의, 그리고 극장의 유령들을 위로하는 제의가 한바탕 벌어진 다음 흔적을 감추듯 희미해진 걸까?
하지만 그저 사라져버리고만 건 아닌 듯하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보고 나면 이제껏 잘 몰랐던 공연 뮤지션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 테다. 생소한 인디 가수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들의 매혹에 함락당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들의 음악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그들이 공연했던 공간에 대해 (기획자인 최고은의 의도대로) 호기심을 느끼며 친숙하게 느낄 법하다. 광주극장이란 어떤 곳이기에 공연하기에 사실 상성이 맞지 않는 공간을 굳이 선택하게 된 걸까?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하기 시작하면 이 낡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품은 장구한 역사를 접하고 놀라워할 테다.
1935년 광주 최초로 한국인 자본에 의해 세워져 창극이나 판소리 공연처럼 조선인들의 심금을 울리던 공연을 열었고, 해방전후 격동기엔 백범 김구의 연설회가 열리기도 했던 곳. 수 차례 증개축을 거듭하며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 존재하며 집단기억의 무대가 된 곳, 극장이 청소년 유해시설로 규정되어 학교 인근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철거 위기에 처했다가 헌법재판소 위헌심판 소송을 치르며 극장의 사회적 개념을 뒤바꿔놓은 곳, 대기업 복합상영관의 홍수 속에 존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독립예술영화 상영에 집중하면서 의도치 않게 '독립'과 거듭 연결되고 만 기구한 운명의 장소인 광주극장의 유래와 접속하는 순간이 도래하고야 만다.
▲ "버텨내고 존재하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엣나인필름 |
광주극장은 865석이라는, 실내 상영관 단관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형 극장이다. 하지만 손님은 그만큼 들지 않는다. 지금 현재도 관객점유율 1% 이하라는, 상업극장으로선 당장 문을 닫아 마땅한 공간이라 매년 폐관 걱정에 단골들은 가슴을 졸여야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문화예술의 역할과 시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어가는 중이다. 1935년에 세워진 이 극장에서 3대가 공유하는 영화에 대한 기억이란 결코 단기 수익성으로 견적을 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문화유산이 별것인가.
그런 광주극장을 왜 지역 출신 뮤지션 최고은은 집요하게 소환하고 소개하려는 걸까. 그의 소망에 근접할수록 2023년 현재 한국사회와 행정에서 독립영화를 포함한 문화예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물론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그런 정치사회적 의도에서 출발한 기획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세상의 이치와 상식의 흐름은 어떤 지점에서 끝내 통하고 마는 셈이다.
하필 이 영화가 극장에 선보이게 되는 시간은 원주아카데미 극장이 보전을 위한 영화인과 지역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근시안적 판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철거되는 와중에 다가왔다. 원주의 오래된 극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역의 독립영화와 영화문화가 예산삭감이라는 수단에 의해 소멸하거나 길들여지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저 이 작품이 선보이는 공연을 즐고 있기에는 현실은 잔인할 정도로 강퍅하다. 영화 중간 중간에 새어나오는 뮤지션들의 곡조 외 유일한 배경음악 역시 하필이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라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세계영화 역사의 고전인 그 영화가 무엇을 담아내고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를 상기한다면 기이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작품정보>
버텨내고 존재하기 Withstanding and Existing
2022|한국|시네콘서트
2023.11.01. 개봉|64분|전체관람가
기획 최고은
감독 권철
출연 고상지&이자원, 곽푸른하늘, 김사월, 김일두,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아마도이자람밴드, 정우, 최고은&주소영, 박태규, 광주극장
배급 엣나인필름
2022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작품상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2023 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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