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누명 쓴 세 소년, 한 형사가 눈치챈 진실
[장혜령 기자]
▲ 영화 <소년들> 스틸컷 |
ⓒ CJ ENM |
영화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살인범으로 지목된 세 소년의 잃어버린 세월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뤄온 정지영 감독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는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극적 허구로 버무려 낸 영화다.
진범은 따로 있는데 살인자가 된 소년들
1999년 전북 삼례의 우리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으로 동네의 세 소년이 지목되었는데, 억울함을 호소할 틈도 없이 감옥에 수감된다. 2000년 삼례로 부임해 온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은 진범은 따로 있다는 제보를 쫓아 애초에 잘못된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 영화 <소년들> 스틸컷 |
ⓒ CJ ENM |
그로부터 16년 후인 2016년. 유일한 목격자이자 사망 피해자의 딸인 윤미숙(진경)과 소년들이 황 반장을 찾아와 재심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윤미숙은 그날의 충격과 오해로 소년들을 범인으로 지목한 과오를 깨닫고 바로잡고 싶어 했다. 뒤늦은 속죄라고 해도 좋으니 제발 도와달라며 무죄를 호소한다.
황 반장은 고민한다. 16년 전, 혼자서는 바로잡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든든한 지원군과 증거 자료, 증인까지 섭외했다. 그날 이후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세 소년의 청춘뿐만 아닌,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족에게 떳떳하고 세상에 떳떳할 그날을 위해 다시 일어서보려고 한다. 왕년에 미친개 소리 듣던 황준철이 아직 죽지 않았다.
앞으로도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
영화는 <재심>의 실존 인물 황상만 반장을 끌어와 황준철로 캐릭터화했다. 본 사건의 의심과 동참을 유도하는 길라잡이로 삼았다. 2000년 재수사 과정과 2016년 재심 과정을 교차편집해 지루함을 덜어내고 생생함을 극대화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의 장점을 살려 관객의 호흡을 리드미컬하게 유지하는 균형감도 놓지 않았다.
▲ 영화 <소년들> 스틸컷 |
ⓒ CJ ENM |
정지영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작품을 돌아보면 소설 원작도 있지만 대부분 실화 바탕이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 머니> 등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부조리, 힘없는 약자의 억울함을 주로 다룬다. 실화 바탕 영화에 탁월한 재능과 마르지 않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유명 재심 사건을 재구성해 스크린에 옮겼다. 모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다들 동조한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 위치를 점검하며 미래를 예측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곡 없이 다루면서도 극적 장치를 두어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세상에는 기득권의 횡포와 소외된 사람들이 많기에 정지영 감독의 뚝심 있는 차기작을 계속 보고 싶어진다.
동년배 감독 중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감독이다. 정지영 감독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다들 마음으로는 약자의 편이라고 하지만 침묵을 지키지 않나. 침묵을 이용해 권력자는 약자를 힘들게 한다. 가제였던 <고발>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보는 시선을 더 담으려고 했다"고 소신 발언했다. 황준철 반장이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마땅히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살인자로 내몰린 세 소년과 진범이지 않을까. 그래서 제목이 <소년들>이 된 건 아닐지 생각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진범은 미안해서 울고 소년들은 억울하고 분해서 함께 울었다. 그들을 엇갈린 운명으로 내몰았던 주체가 처벌 받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20년도 더 된 사건을 또다시 소환한 이유는 나와 가족, 지인이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겪지 않아야 한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한다. 꾸준히 이 같은 사건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상을 조금이나 바꾸어 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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