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축척 1’의 지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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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과학에 대한 열정'에는 위 단어를 숭배하는 제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지도에서조차 생략과 축소, 과소와 과장을 인정하지 못했다.
축척 1:1의 지도 말이다.
이번 보도의 목표는 ODA와 관련해 축척1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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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엄밀·일치·전체’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과학에 대한 열정’에는 위 단어를 숭배하는 제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지도에서조차 생략과 축소, 과소와 과장을 인정하지 못했다. ‘현실과 똑같은 지도’를 그리려고 애쓴다. 축척 1:1의 지도 말이다. 산과 바다와 집, 길을 세계와 같은 배율로 재현하려 한다. 부분이 아닌 전체가 담긴 지도다. 하지만 무위가 된다. 사람들은 깨닫는다. 그런 지도는 불가능할 뿐더러, 무의미하다는 것을.
‘태양광과 장작-K원조 추적기’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많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나쁜 부분만 지적한다”, “태양광 사업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반의 이야기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의한다. 잘 된 공적개발원조(ODA)도 많을 것이다. 기사엔 담지 못했다. 해외원조와 관련된 환부, 역린, 부실, 실패, 문제 사례에 집중했다.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는 심각하다.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원조 필요성도 동감한다.
하지만 보르헤스를 빌어 말한다. 이번 보도의 목표는 ODA와 관련해 축척1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무의미할뿐더러 불가능하다. 건건의 해외원조를 산술평균하면 좋은 점수가 나올 수도 있다. 핵심은 그렇게 납작해진 평균을 조명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온건해진 평균치를 매긴다 해도, 그것이 곧 보편을 나타내는 진실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시정연설에서 “개발원조 예산을 6조5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돈이 국경을 넘어 개발도상국에서 도달 했을 때, 수혜자(수원국 국민)들이 느끼는 개별 경험은 다르다. 납세자(공여국 국민)는 알권리가 있다. 원조로 인해 특수한 피해, 불편, 부당이 있었다면 그것이 우리나라 원조의 환부이자 역린일 것이다.
저널리즘은 선택해야 한다. 역동적이고 의미있는 개별을. 문제점을 드러내고, 오점을 밝혀내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축척1의 지도가 아니었다. 정밀한 약도였다.
‘왜 언론은 나쁜 부분만 과대포장하냐’는 지적을 종종 듣는다. 그건 간혹 현실과 똑같은 크기의 지도를 그리라고 지적하는 말로 들린다. 안일하고 보수적인 얘기다. 그런 말엔 이 문장으로 응답하고 싶다. “다음 세대들은 그 널따란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약간은 불경스럽게도 그 지도를 태양과 거울의 자비에 내맡겨버렸다.” 소설의 결말이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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