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출하는 불성실공시…울고싶은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
한미·녹십자·SK바사 등도 제재받아
제도 변경에 혼쭐…기업 구상까지 문제되기도
국내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받고 있다. 기존에는 공시 업무에 미숙한 소규모 바이오텍이 쓴 오명이었다면 올해 들어서는 시가총액 조 단위의 대형 제약·바이오기업도 지정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셀트리온제약은 지난달 27일 '조회공시 답변 사항 잘못 공시 및 중요사항 미기재'를 이유로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다. 셀트리온그룹 합병 과정에서 셀트리온제약이 완전하게 제외되지 않았음에도 대상에서 빠진 것처럼 읽힐 수 있도록 공시를 잘못했다는 이유다. 셀트리온그룹은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양사를 우선 합병하고, 이후 통합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두 번째 합병을 추진한다는 합병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셀트리온제약은 "이번 사업회사 간 합병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공시하면서 한국거래소는 셀트리온제약이 공시를 잘못했다고 판단했다. 처벌로는 벌점 4.5점을 부과됐지만 실제로는 벌점 대신 제재금 1800만원이 대체 부과됐다.
불성실공시는 상장법인이 공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공시 불이행, 공시 번복, 공시변경 등의 위반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뜻한다.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으로 인한 누적 벌점이 코스피는 10점, 코스닥은 8점 이상이면 하루 간 매매가 정지된다.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까지 된다. 공시는 기업의 올바른 정보를 제대로 알리는 상장사의 의무인 만큼 반복적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대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최근 들어 셀트리온제약 외에도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등 대형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연이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시장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불거지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의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은 지난 8월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신청에 대한 지연공시를 이유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한미약품에 1600만원, 한미사이언스에 800만원의 공시위반제재금이 부과됐다. 앞서 지난 7월 한미약품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의 '에페글레나타이드(개발명 HM11260C)'의 비만 치료 적응증 확보를 위한 임상 3상 IND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러나 이는 거래소의 코스피 바이오 공시 가이드라인을 위배한 사안이었다. 임상 3상은 IND 신청 및 결과, 임상 결과 또는 중지·중단 사실을 모두 공시해야 한다. 한미약품은 바로 다음날 공시를 했지만 거래소는 이를 지연공시로 봤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는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판매·공급계약의 지연공시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6월 8일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14일이 돼서야 계약 체결을 공시했고, 녹십자는 지난해 맺은 2022~2023절기 독감 백신 공급계약을 1년이 지나 공시했다. 양사에는 각 800만원의 제재금이 부과됐다.
'의도적' 지연 공시로 보긴 힘들어
다만 기업에 불리한 사실을 감추려는 게 아니라 기업에 도움이 되는 호재이고, 이미 회사 또는 정부에서 언론을 통해 충분히 알린 내용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사례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도 광동제약이 영업정지 사실을 지연공시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돼 벌점 5점에 5000만원의 제재금을 받기도 했지만, 이 같은 사례와는 달리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며 변경된 제도들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시적 실수에 가깝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제재의 근거가 된 코스피 바이오 공시 가이드라인은 2020년 만들어졌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홍보에 나선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거래소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한미약품이 마지막으로 대형 임상 3상에 돌입한 게 2019년인 만큼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IND 승인도 아닌 신청까지 모두 공시하는 건 기업에 부담"이라며 "제품 개발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도 제도 변경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개별 도매상들이 입찰하는 방식이었던 국가 독감백신 입찰이 제조사에서 직접 입찰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해당 매출이 일괄적으로 제조사의 매출로 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종래에는 공시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매출이 기준을 넘을 경우 공시 의무 사안으로 바뀐 것이다. GC녹십자는 거래소에서도 1년이 지나서야 지연공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또한 한미약품의 경우 기업이 먼저 선제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안이고, 독감 백신 역시 질병관리청에서 올해 조달계약이 완료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242만회분을 1만650원에 공급했다는 내용을 알리기도 하는 등 의도적 은폐로는 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잇따른 불성실 공시 논란은 기존의 사례와는 달리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논란은 대부분 제도의 급작스러운 변경이나 기업의 향후 구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라며 "기존의 논란들은 기업의 리스크를 숨기려는 의도로 발생한 일이 많았다면 오히려 이번 사건들은 기업이 먼저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렸던 호재들이었던 만큼 동일선상으로 보기 어렵고, 일시적 상황인 만큼 재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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