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금융당국 "규제개혁" 무색…더 늘어난 혁신 걸림돌
2년 전보다 13건 증가해
외부 평가에서 "대부분 사전규제" 지적
정부 권고→법제화로 규제 강도도 세져
금융위 "개선 노력 중"이라지만
현장에선 "체감 어려워" 토로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 중인 A은행과 A카드사는 금융규제 탓에 한 금융사 아래 있는데도 고객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따로따로 라이선스를 받고 서비스를 개발해야 했다. 복잡한 절차를 여러 번 거치고 이중으로 돈을 쓰고 있어 사업 추진에 애로를 겪었다. 마이데이터 이용자도 A은행 애플리케이션(앱) 내 서비스 동의 절차를 A카드사 앱에서 똑같이 밟아야 해 불편함을 느꼈다.
금융당국이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나섰지만 2년 새 금융규제 총량은 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사들의 혁신 동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 편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제성 띤 규제 증가세…매년 신설·강화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금융위원회 소관 '명시적 규제'는 851건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2019년 789건, 2021년 838건에서 더 늘어났다. 금융규제는 명시적 규제와 비명시적 규제(행정지도, 자율규제)로 나뉜다. 그중 명시적 규제는 법률, 대통령령 등 법령으로 금융사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금융사에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비명시적 규제와 달리 강제성을 띤다.
매년 새로 생기거나 강화되는 명시적 규제도 상당수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신설된 규제는 15건, 강화 규제는 24건이었다. 법령 유형별로는 고시가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시행령 6건, 법률 1건 순이었다. 신설 규제에는 ‘선불?직불지급수단에 대한 연계?제휴서비스 규제 근거 마련’, ‘데이터전문기관 지정의 유효기간 설정’ 등이, 강화 규제에는 ‘정보집합물의 결합 방법’, ‘민간중금리대출 금리상한 조정’ 등이 포함됐다. 2021년에는 신설 규제 74건, 강화 규제 23건으로 신설 규제 비중이 더 높았다. 고시 45건, 시행령 40건, 법률 9건, 시행규칙 3건 순이었다.
금융위가 명시적 규제를 신설·강화하려면 ‘금융규제 운영규정’에 따라 자체심사를 한 뒤 외부 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외부 평가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의 지난해 실태평가를 보면, 명시적 규제 대부분은 평가 원칙인 사후규제, 네거티브 방식(금지사항 외에 모두 허용하는 방식) 등을 적용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행정연구원은 “사후규제, 네거티브 방식이 적합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적용하지 못했다”면서도 “왜 반영하지 못했는지를 규제영향분석서에 더 충실하게 기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행정지도’는 최근 감소하는 추세지만 이마저도 법제화되면서 줄어든 영향이 컸다. 금융위 행정지도 건수는 2019년 39건에서 2021년 40건으로 늘어났다가 올해 9월 기준 11건으로 줄어들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행정지도 방식은 강제성이 없어 관리·감독이 애매하기 때문에 명확히 하기 위해 법제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강도가 더 세지는 셈이다. 행정지도는 법령에서 정하고 있진 않지만 당국이 금융사에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행위로 사실상 명시적 규제에 준해 그림자 규제라고도 한다.
당국 노력에도 "비효율적 규제 여전", 소비자 편익은 ↓
금융위도 규제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비용관리제에 따라 매해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규제를 늘리고 있다”면서 “규제비용 감축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매년 말이면 규제개선 과제도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 과제에는 총 21건이 올랐다. 개인신용조회회사(CB사)의 겸영·부수업무를 확대해 CB사가 데이터 전문기관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화상통화를 통한 보험 모집을 허용하는 내용 등이다.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여기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개선이 안 된 과제가 다음 해로 이관되는 경우는 일부, 대다수는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 3년마다 돌아오는 일몰 심사에서도 대부분은 일몰 연장된다. 올해 심사 대상에는 2건이 올라 있다.
현장에선 정부의 혁신금융 노력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많다. 규제가 되레 늘어나 금융산업 경쟁력은 물론 소비자 편익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혁신금융서비스인 마이데이터 사업이다. 현재 은행, 카드 등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계열사 간 개인신용정보를 주고받지 못하도록 금융규제 때문에 중복 투자, 서비스 시행 지연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금융사들이 제공하는 자산관리서비스가 단순 자산 나열에 그치는 것도 금융사의 금융상품 추천, 투자 제안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로 데이터 수집이 어렵고 공공데이터에 의존하다 보니 금융사별 데이터 차별성이 부족하고 고객들에게 원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 역시 “데이터 선순환이 가능하다면 지금보다 수익 모델, 서비스가 좋아질 텐데 비효율적인 규제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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