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깜깜이 예산, 특수활동비

라동철 2023. 11. 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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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으로 받아 증빙 자료 없이 사용 가능하고
구체적인 내역 공개도 제한돼 오남용 우려 커

검찰, 정보공개 소송 패소에도 자료 부실하게 제출하고
일부 은폐한 의혹으로 고발돼

국회, 용도 불분명한 특활비 예산 삭감하고
내외부 통제 강화하는 제도 개선 나서야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 모임이란 단체가 지난달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최종 판결한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사용 내역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은폐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사유와 금액, 지급 대상을 간략하게 적시하면 증빙 자료 없이 사용할 수 있고 현금으로도 지급받을 수 있는 데다 ‘기밀’을 이유로 구체적인 사용 내역 공개가 제한돼 ‘깜깜이 예산’으로 불린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건 아니다. 2017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전직 국가정보원장 3명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1년6개월~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활비는 다른 예산으로는 원활한 업무 수행이 곤란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편성해야 하고 특수활동 실제 수행자에게 필요 시기에 따라 지급하는 등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는 검찰 수사팀의 논리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지검장이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수사 실무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특활비 부정 사용을 단죄했던 검찰이 같은 의혹에 휩싸인 것은 아이러니다. ‘세금도둑잡아라’등의 시민단체들이 2019년 검찰총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 4월 최종 승소하면서 공개의 단초가 마련됐다. 2개월 뒤 검찰은 정보공개 청구기간인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총 292억원을 지출한 내용의 특활비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대검 각 부서의 지출내역기록부와 지출 증빙자료가 빠져 있는 등 자료가 부실해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검찰의 특활비 부정 사용은 실체 없는 막연한 의혹이라고 하긴 어렵다. 2017년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검찰국장이 법무부 검사들과 저녁 회식자리에서 돈봉투를 나눠줬는데 자금 출처가 특활비로 드러난 바 있다. 특활비가 기관장 재량하에 격려·포상금, 회식비, 전별금 등 기밀 수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용도에도 공공연하게 지출되고 있다는 내부 증언도 있다. 시민단체와 뉴스타파 등도 전국 검찰청을 상대로 받아낸 자료를 분석하고 추가 취재한 결과, 특활비 부당 사용 사례들을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이임 직전 기관장이 특활비를 ‘셀프 수령’했거나 부서별로 균등하게, 그것도 연말에 집중적으로 나눠가진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공기청정기 임대·기념 사진 비용(광주지검 장흥지청), 휴대전화 요금 결제(춘천지검), 국정감사 격려금(인천지검 부천지청) 등으로 사용한 곳도 있었고 대전지검 논산지청은 수사를 담당하지 않는 총무팀장에게 지급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달 국회 법사위 대검 국정감사에서 “한 푼도 잘못 쓰이지 않게 지휘하고 있다”고만 할 뿐 정작 특활비 집행지침서 공개마저 거부하고 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등을 위해 특활비를 운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기획재정부의 관련 지침을 어기고 합당한 용도가 아닌 데까지 특활비를 오남용하는 것이 문제다. 특활비의 투명성을 높여야 마땅하다. 민간기업도 공금을 사용할 경우 증빙서류를 갖춰야 하는데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은 더더욱 투명하게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 내부 통제를 강화해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고, 수사 종료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용 내역을 공개토록 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검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실, 경찰청, 감사원, 국방부 등 특활비를 운용하는 10여개 정부 기관들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활비 편성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국정원 예산을 제외하고도 특활비 규모가 2500억원이 넘는다. 이게 정상인지 의문이다. 국회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용도가 불분명한 특활비는 삭감하고 내외부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활비를 영수증 없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눈먼 돈’으로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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