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메트로폴리탄 서울

고승욱 2023. 11. 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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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한성)은 4대문안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뤄졌다.

4대문안은 왕궁을 중심으로 쌓은 서울 한양도성 안쪽이다.

천도 30년 만인 1424년 세종대왕은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흥인지문과 광희문 바깥 마을까지 서울을 넓혔다.

이후 성곽에서 2㎞ 이내인 성저오리를 거쳐 지금의 동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서대문구, 은평구, 용산구, 마포구에 해당하는 성저십리가 서울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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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논설위원


조선시대 서울(한성)은 4대문안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뤄졌다. 4대문안은 왕궁을 중심으로 쌓은 서울 한양도성 안쪽이다. 지금의 종로구와 중구에 해당하는 원도심이다. 성저십리는 성 아래 10리라는 뜻으로, 성곽을 기준으로 4㎞ 이내 지역이다. 천도 30년 만인 1424년 세종대왕은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흥인지문과 광희문 바깥 마을까지 서울을 넓혔다. 이후 성곽에서 2㎞ 이내인 성저오리를 거쳐 지금의 동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서대문구, 은평구, 용산구, 마포구에 해당하는 성저십리가 서울로 굳어졌다.

20세기가 되자 서울은 한강 이남으로 진출했다. 1936년 경기도 시흥군이었던 지금의 영등포동, 대방동, 노량진동, 상도동, 흑석동, 동작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49년에는 구로·대림동과 중랑구, 광진구, 송파구 잠실동 주민이 서울시민이 됐다. 지금의 서울 경계가 그어진 건 63년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고,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서울 확장 정책을 내놨다.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 도봉·노원구로, 구리면 일부가 중랑구로 바뀌었다. 한강 이남에서는 광주군 일부가 강남구와 송파구로 정비됐다. 강남 신화의 출발점인 셈이다. 경기도 김포군과 부천군 일부도 강서구와 구로구가 됐다. 이후에도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광명시 광명동 일부가 서울 땅이 되는 소규모 변화가 이어졌다.

경기도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국민의힘의 메트로폴리탄 서울 계획이 종일 화제다. 주민 대부분이 서울로 출퇴근하니 아예 서울로 바꿔 생활·문화권과 행정구역 괴리를 해결하겠다는 게 명분이다. 구리·하남·광명시도 함께 추진키로 해 일산·분당 신도시가 있는 고양시, 성남시까지 들썩인다. 말하자면 전(全) 수도권의 서울화다. 팽창 억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인데, 비슷한 계획이 여러번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선거용이라는 의심은 강하게 들지만 이번 기회에 제대로 검토해보는 건 어떨까.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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