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검토’와 ‘추진’ 사이, 장관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지만…
‘추진’으로 비쳐지며 곤욕 치러
노련한 행정가, 본뜻 없었을까
움츠러든 교육부, 정보 더 숨겨
공론장 막혀 정책 부실화 초래
‘피드백’ 차원 발언은 용인돼야
관가(官家)에선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언론이나 대중의 반응을 떠보려고 ‘검토’란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검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분석하여 따지는 일입니다. 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고민 중이란 뜻이죠. ‘추진’과 차이가 있습니다. ‘신중 검토’ 혹은 ‘적극 검토’ 등으로 조금 더 의중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신중이란 말은 안 하겠다 쪽으로, 적극이란 말엔 추진 쪽으로 기울었다고 봅니다.
검토란 말이 오묘한 이유는 사용하는 인물의 위치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말단 실무자 입에서 나온 검토와 고위급 간부가 말한 검토는 다르죠. 정책 결정의 피라미드 꼭짓점 부근에 있는 인물일수록 추진에 가깝게 받아들여집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검토란 말을 꺼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질타를 당하고 국회에서 사과도 했습니다. 발단은 언론 인터뷰였습니다. 이 부총리는 인터뷰에서 대학 신입생의 30%는 3학년 때 전공을 선택토록 하는 자율전공으로 뽑도록 하고, 이들에게 의대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해보겠다고 했습니다. 현행 의대 입시 외에도 ‘자율전공→의대’ 경로를 추가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의대 입시에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입학 정원이 1000명인 대학을 가정해봅시다. 300명은 무전공으로 입학합니다. 이 중 상위 5%인 15명에게 3학년부터 의사의 길이 열립니다. 대학은 인재가 몰려오니 뽑을 때는 좋습니다. 하지만 대학 1, 2학년부터 15명 안에 들어가려는 전쟁터가 만들어집니다. 아마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도 병행하겠죠. 15명 안에 못 들어간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자퇴하고 수능을 보려고 말이죠. 지방대는 일반 학과와 의대 커트라인 간의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대입 현장과 대학 학사는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
이 부총리가 왜 이런 정책을 꺼냈을까요. 교육부 안팎에서 여러 말이 나오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는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넓힌다는 일차원적 사고였다는 겁니다. ‘자율전공 학생의 선택지 하나 추가하는 일’로 가볍게 봤다는 겁니다. 사실이라면 안일한 판단일 겁니다. 하지만 노련한 교육 행정가인 이 부총리가 그리 단순하게 생각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좀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은 자율전공 확대의 ‘마중물’로 의대 입시 열기를 활용하려는 의도였다는 겁니다. 이는 ‘교수 철밥통 깨기’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 부총리는 대학들이 자율전공으로 신입생을 많이 뽑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율전공을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대학 경쟁력은 곧 교수의 경쟁력이고, 교수 사회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경쟁을 붙여야 한다고 보는 듯합니다.
자율전공이 확대되면 교수는 학생으로부터 선택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이든 취업이든 연구든 매력 있는 분야로 인식되도록 해야 합니다. 1학년부터 전공이 결정돼 들어오는 학생을 대상으로 편하게 교수 생활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율전공을 늘리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방식만으로 대학과 교수 사회가 움직일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의대 허용 카드를 살짝 보여줬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 부총리의 검토 발언은 추진 의사로 받아들여지고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정부와 의사 단체가 충돌하며 시끄러운 와중에 말입니다. 의대 입시 문제가 터질 수 있는 ‘폭탄’ 발언이 나온 것이죠. 용산 대통령실이 불같이 화낸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응이 너무 거칠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교육 수장을 그렇게까지 공개 망신 줄 필요가 있었냐는 거죠.
교육부는 잔뜩 움츠러 들었습니다. 이 부총리는 이번 일로 예정됐던 언론 인터뷰를 무기한 연기했답니다. 의대 입시와 관련해서는 입도 뻥끗하려 들지 않고 다른 민감한 정책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교육 행정은 한층 ‘깜깜이’가 됐습니다. 이 부총리는 이제 만나던 사람만 계속 만날 겁니다. 대중과의 소통은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밑에 사람들은 더욱 입단속하게 됩니다. 특히 대입 같은 민감한 분야에선 교육부 특유의 비밀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교육부의 비밀주의는 보신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교육부는 정보 공개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일례로 대도시 사교육 특구와 농산어촌의 수능 점수 격차, 고교 유형별 수능 등급 차이, 소득 수준별 점수차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습니다. 교육부 내부에서 정보를 공개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당신이 책임 질 건가’란 말이 돌아오기 일쑤죠.
교육부가 정보를 꽁꽁 숨기니 학문적 연구도 불가능합니다. 이러니 입시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추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은 저마다 자신이 학교를 다녀본, 자녀를 학교에 보내본 경험으로 교육 정책을 재단합니다. 데이터와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지지를 받는 단단한 정책은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입 정책뿐만 아니라 교육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근본 이유일 겁니다.
윤 대통령은 ‘장관의 말은 천금’이라며 이 부총리의 ‘자율전공 의대 허용 검토’ 발언을 호되게 질책했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장관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중에게 던져보고 피드백 받아 추진할 건 추진하고, 설득할 건 설득해보고, 접을 건 접는, 그야말로 대중과 호흡하는 열린 방식은 나쁜 걸까요. 검토 정도는 괜찮아야 윤 대통령이 앞서 강조했다는 스타 장관도 가능할 텐데 말이죠.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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