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흰 까마귀를 본 적 있습니까?”

강주화 2023. 11. 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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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판이 열렸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산모, 영유아, 노인 등이 숨지거나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012년 2월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독성을 확인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완벽히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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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화 산업2부장


최근 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판이 열렸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산모, 영유아, 노인 등이 숨지거나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사건이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1년 4월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중증폐렴 임산부 환자가 증가하면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012년 2월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독성을 확인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이 분명해졌지만 기업에 대한 제재나 처벌, 피해자 구제는 지지부진했다.

검찰은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2016년에야 수사팀을 구성했다. 1차로 기소된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와 전 롯데마트 대표 등이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2018년 처벌을 받았다. 2019년 2차로 기소된 SK케미칼 전 대표와 애경산업 전 대표, 이마트 관계자 등 13명의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를 접수해 공식 인정한 사망자만 1177명, 질환자는 3999명에 달한다. 한국전쟁 이후 단일 재해로 가장 많은 인원이 숨진 사건이라고 한다.

안전성은 소홀히 한 채 제품 판매하는 데만 몰두한 기업의 책임이 가장 크다. 첫 가습기살균제가 나온 1994년부터 2011년 수거명령 전까지 판매된 제품은 40여종 950만개가 넘는다. PHMG 성분제품 판매 비율 46.56%,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제품 판매 비율 26.86% 순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PHMG는 그 유해성이 입증돼 해외에서 매우 까다롭게 관리하는 성분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엄격한 검증 없이 PHMG를 살균제에 사용했다.

배상에도 소극적이었다. 정부가 피해자를 선구제하고 18개 기업에 분담금 1250억원을 징수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재판 과정에서 기업들이 보인 태도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실망감을 줬다. 2차로 기소된 기업 대표 등에 대한 재판에서 기업 측 변호인은 재판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흰 까마귀를 본 적 있습니까?” 답변은 ‘있을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본 적 없다’였다. 이 기업들이 만든 가습기살균제 주요 성분인 CMIT·MIT와 폐질환의 인과성을 ‘흰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인과성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조사 결과가 없기 때문에 해당 기업인들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2021년 13명은 모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내 몸이 증거”라며 분노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하지만 당시 기업 대표 등은 법리라는 방어막 뒤에서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항소심 과정에서 인과성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제출됐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내년 초에 있을 2심 선고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돌이키기 어려운 가정을 해본다. 기업들이 제품 출시 후 소비자들의 사용 경과를 면밀히 살피고 문제를 확인했을 때 자발적 리콜(Recall)을 했더라면.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배상에 적극적이었다면.

더 빨리 사과했다면. 재판에서 무죄를 강하게 다투지 않았다면 기업에 대한 유족과 피해자, 국민의 실망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기업이 유해 제품 제조에 대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기업이 소비자 피해 예방과 구제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완벽히 실패했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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