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중의 한국 ‘고공 패싱’에 대비해야
한국 반도체 업계에 10월 초 고무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했던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규제를 번복했다. 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중국 시안(西安) 낸드 공장과 우시(無錫) D램 공장을 정상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뭔가 좀 개운치 않다. 그동안 미국은 미·중 전략 경쟁에서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 경제를 옥죄며 효과를 봤는데 이번에 너무 갑자기 파격적으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승리”라는 윤석열 정부의 설명보다 더 큰 무언가를 미국이 노리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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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앞둔 바이든은 경제 걱정
시진핑 주석의 방미에 공 들여
한국, 반도체로 미·중 설득해야
」
주지하듯 미국은 올 초부터 미·중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다. 왜냐하면 중국이 지난 3월 양회(兩會, 전인대와 정협)에서 경제 활동 재개(리오프닝)를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미국은 2021년의 경험, 즉 중국의 ‘제로 코로나’로 얻은 경제적 낙수효과를 떠올린 것 같다. 당시 중국 경제는 전년보다 8.11% 성장했고 세계 경제는 5.87%, 미국은 5.95%, 한국도 4.15%의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보다 145%, 수입은 132% 증가했다.
지난 8월 공화당이 첫 대선후보 토론을 열면서 미국은 대선 정국에 들어갔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하려면 내년 1분기와 2분기 미국 경제지표의 대폭적 호전이 절실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국가부채는 31조4000억 달러(약 4경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26%를 넘었다. 지난달 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를 간신히 막았지만, 45일이 지난 11월에 유사 사태가 또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도 경기회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성장률을 5% 전후로 신중하게 내다봤는데 1분기 4.5%, 2분기 6.3%, 3분기 4.9% 성장률을 기록해 많은 기관의 7% 예상에 미달했다. 게다가 7월까지 줄곧 상승한 청년실업률이 21%를 넘자 놀란 중국 정부가 이후 통계를 발표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 경제 회복이 어려운 더 큰 이유는 헝다(恒大)와 비구이위안(碧桂園)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줄 파산 위기에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이들 기업이 회생하려면 혹독한 개혁이 필요하다.
미·중 경제 회복의 관건은 역시 4차산업 발전이고 핵심은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는 4차산업의 심장이자 두뇌다. 반도체의 원활한 공급이 핵심이란 의미다. 미국은 비메모리 반도체만 생산하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4차산업의 발달 속도는 빠르다. 따라서 반도체의 수급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해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는 바람에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이 어려웠다. 한국기업이 세계시장 수요의 60%를 공급하는데, 그중 40%를 중국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게 발달하는 4차산업의 반도체 수급을 위해 미국은 중국에서 이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원활한 반도체 공급은 미국 경제의 원활한 회복뿐 아니라 내년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그러려면 중국 경제의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이 때문에 미·중 양국은 서로 필요해 손을 잡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11월 중순 주최하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에 공을 들인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양국이 손잡고 한국을 ‘패싱’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우리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미·중 양국에 대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상위 반도체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중국 국내 판로는 제한될 것이다. 중국 경제 회복을 위한 상위 반도체 공급은 한국에서 제조한 것에 국한하고, 중국 내 공급은 한·미가 공동으로 선정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 정부는 삼성전자의 용인 생산기지가 미국보다 더 신속히 준공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 한국 기업의 선도적 위상과 능력에 도전하는 경쟁자가 상당 기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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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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