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 줄세우는 의원들 속셈…이런 국감을 국감해야 [박용후가 소리내다]
국정감사 시즌이면 기업은 비상이 걸린다. 몇몇 의원실 앞에는 기업 대관 직원들이 줄을 서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해당 기업의 총수나 고위 임원이 증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대관을 맡은 기업 관계자들은 마치 범죄자가 심문을 받는 심정으로 의원실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많은 대관 직원들은 기업이 의원실의 요구사항을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따라 증인이 채택되기도 하고, 명단에서 철회되기도 한다는 하소연을 했다. 주로 지역 후원, 협약식, 행사 그리고 의원 이름 내세울 보도자료 거리 제공 등이 테이블에 오르는 주요 주제다.
올해 역시 국감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과도한 기업인 증인 신청을 자제해달라는 여야 지도부의 메시지가 나왔다. 하지만 채택된 증인은 환경노동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144명보다 많은 160여 명에 달했다. 국감에 증인으로 소환된 기업인의 수는 연평균으로 17대 국회 52명, 18대 77명, 19대 124명, 20대 159명이었다. 21대 들어서는 2020년 63명으로 줄더니 다시 2021(92명)부터 다시 늘었다. 특히 의원실 한 곳당 수십 명에 달하는 기업인 증인을 신청하는 경우도 매년 반복된다. 올해도 증인 신청 기간 중 몇몇 의원실에서 기업인 수십 명을 신청해 해당 의원실 앞에서 여러 기업 관계자들이 간식을 싸 들고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촌극이 발생했다.
기업인 증인 출석 구실로 후원 요청도
국감은 헌법 61조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한 행사이고 정부(기관)를 상대로 질의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그 임무를 빌미로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을 ‘손보는’ 일을 하거나 자신의 득표를 위해,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대리전에 참전하는 방식으로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모 의원은 한 김밥브랜드를 공격하면서 국감장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다. 해당 브랜드가 “유기농쌀을 쓴다면서 일반미를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유기농쌀을 쓴다는 표현은 그 업체 매장 어디에도 없었고 업주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은 그 브랜드가 사용하는 쌀 이름이 유기농과 비슷한 영어 이름을 가진 상품이었을 뿐이었다. 90%가 넘는 대부분의 점주가 의원실로 몰려가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해당 의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인 검색만 제대로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국감 증인 출석을 인질 삼아 매년 기금이나 후원 요청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업들은 증인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 의원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이유로 기업인을 묻지마 소환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의 경우를 살펴보면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들이 농가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2017년에 만들어졌다.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을 통해 매년 1000억원, 10년간 총 1조원의 기금을 모으자는 것이 목표였다. 출연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모금액은 매년 목표의 30%밖에 되지 않았고 모금 기준도 없어서 기업마다 출연금도 제각각이었다. 2018년에서 2021년까지 국감장에 기업 관계자를 소환해 망신주기 및 출연 요청이 반복되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증인명단 의결 후 철회하거나 비공개 간담회로 전화해서 기업에 기금출연을 당부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반면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겉돌았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기금 출연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3년째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치적 도움된다 싶으면 무조건 불러"
대관업무를 하는 많은 이들에게 국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국회를 출입했던 베테랑 기자 출신도, 로펌 출신도, 얼마 전까지 국회에서 일했던 보좌관 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망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단지 그들이 ‘을’의 입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푸념을 하는 것일까. 로펌 출신인 대관 직원은 “정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기업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부른다”며 “그래야 기업에서 찾아와서 머리를 조아리게 되고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가 보더라”고 했다. 기자 출신 대관 직원은 “문제가 있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치적으로 활용할만한 기업을 불러 놓고 질의 거리를 억지로 찾아내더라”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결국은 다른 의원실에서 불러 결국 정치적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컨설턴트 사이먼 시넥(Simon Sinek)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란 책에서 ‘왜’를 잊으면 목적과 멀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감을 왜 하는지 잊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국감을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은 필요할 때만 입에 올리는 국민에 의해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국감장은 온전하게 국민의 미래를 위해 국민이 볼 수 없었던 국정의 숨겨진 잘못을 따져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또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설익거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내용을 걸러내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묻는 자와 답하는 자 간 힘의 불균형 속에서 만들어지는 억울함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추후에라도 공방이 오간 부분에 대한 사실 확인 및 반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국감에 대한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국감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지적된 당사자나 소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감 팩트체크 시스템 구축 고려해야
세계에서 처음 국감을 실시한 영국 의회는 한국과 달리 상임위가 아닌 부처별ㆍ주제별 특별위원회를 꾸려 소관 정부부처 및 기관 등에 대해 감독 권한을 행사한다. 또 의회는 특정 사건에 대한 ‘임시수사센터’를 꾸려 감사와 조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밖에 선진국 의회들은 감사와 조사를 상시적으로 수행하여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국감 팩트체크 시스템 구축도 고려할 부분이다.
김용담 전 대법관은 “판사는 법에 기대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국회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대의에 기대어 호가호위해야 한다. 현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그들 자신을 위해 호가호위하는 것 같다. 이러니 국회 주변에선 “국감을 국감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회의원은 ‘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미래를 위해, 국리민복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쓰는지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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