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물 국채 금리 조절하던 일본, 상한선 1% 넘겨도 허용
일본은행(BOJ)이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를 초과하더라도 이를 일정 수준 허용하기로 했다.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며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해온 BOJ가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출구전략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31일 BOJ는 전날부터 이틀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면서, 장기금리 상한선을 유연화했다.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폭 상한을 0.5%에서 1%로 올리고 이를 웃도는 움직임을 용인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7월 상한선을 0.5%로 잡고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 상승을 1%까지 용인한지 3개월 만이다.
일본은 2016년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도입해 10년물 국채금리 상한선을 정해 놓고 시장 금리가 이보다 높아지면 BOJ가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춰왔다. 가계와 기업 자산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해 물가·임금 상승을 이끌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들어 YCC 정책을 수정·폐지하고 통화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과의 금리 차 확대로 엔화 가치가 떨어졌고, 이것이 수입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일본 소비자물가를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지수가 상승률 전망치(전년 대비)를 지난 7월 2.5%에서 이번에 2.8%로 상향 조정했다. 주목할 부분은 내년도 상승률이다. 이번에 기존의 1.9%에서 큰 폭 오른 2.8%를 전망치로 제시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급등해 일본 장기금리 오름세도 가팔라져 정책 수정 필요성을 키웠다.
하지만 BOJ는 이날 정책 전면 수정보단 미세 조정을 택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장기금리를 1% 이하로 강하게 억누르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향후에도 2%대를 계속 유지할지 확실하게 예측할 만한 상황은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가 내년 상반기 완화정책을 점진적으로 종료해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BOJ가 YCC 정책을 과감히 손보지 못하는 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 재무성이 9월 발표한 기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사내유보금(금융·보험업 제외)은 554조7777억엔(501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들이 경기 하강을 우려해 투자를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심각한 고령화와 낮은 노동생산성 때문에 하락세인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다.
손영환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내년 춘투(노사 임금협상)의 임금인상률이 금년 수준(3.7%)을 크게 하회하는 2%대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고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해야 임금과 물가가 모두 상승하면서 경기가 회복될 수 있는데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경제학) 교수는 “일본은 과거 경기가 좋아지다가 금방 꺾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행으로선 무리하게 금리 인상을 했다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날 BOJ 발표 전 달러·엔 환율은 149엔대에서 움직였지만 발표 직후 150엔대에 재진입해 엔저를 이어갔다. 고토 유지로 노무라 증권 수석 환율 전략가는 “미국 장기금리가 여전히 높아 이번 결정이 달러 강세 압력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오효정·김경희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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