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횡포” vs “99% 지급했다”…현대해상 국감 간 ‘실손보험금 부지급’
지난 10월 27일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손해보험사들 관심이 집중됐다. 수개월간 이어진 ‘어린이 실손보험 부지급’ 논란의 중심에 선 현대해상 수장이 증인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를 국감장으로 불러낼 만큼 그동안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 논란은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수습되느냐가 손해보험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환자 수 대비 보험금 급증
보험업계 “치료 체계 붕괴”
발달지연 아동 치료 실손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가입자 간 갈등은 지난 5월 현대해상이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심리치료비 등 보험금 심사 기준을 강화하며 시작됐다.
현대해상은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미술·음악·놀이치료사 등의 치료 행위는 실손보험금 청구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치료사 자격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 절차를 강화했다. 이전에는 치료 세부내역서와 영수증만 있으면 보험금 청구가 가능했지만 향후 치료사명과 치료사의 자격증명서, 자격번호, 치료일지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면허를 가진 대학병원과 국가지원 발달장애인 거점병원을 제외한 의원급이나 아동병원에서 민간 놀이치료사가 치료를 진행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민간 놀이치료사 행위를 정당한 의료 행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현대해상이 심사 기준을 강화한 이유는 일부 병·의원의 과잉 진료와 브로커를 동반한 보험사기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의사 면허를 대여받아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이 발달지연 아동을 대상으로 무면허 진료를 행하고 부설 발달지연클리닉을 통해 의료급여와 보험금을 챙겼다는 혐의로 수사받은 사실이 확인되며 이 같은 우려는 증폭됐다.
수치상으로도 코로나19 전후 발달지연 진료 환자 수와 비교해 지급된 보험금이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지연 관련 진료 환자는 11만6748명으로 2018년(6만1542명)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메리츠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5개 보험사가 지급한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금은 같은 기간 191억원에서 1185억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현대해상은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발달지연 관련 심층 분석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불법 행위를 포착했다는 것이 현대해상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 운영은 의사가, 치료센터 운영은 브로커가 담당하는 일종의 사무장 병원이 난립하고 있는가 하면, 환자 진료 수익을 의료기관과 치료센터가 일정 비율로 배분하는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가 생겨났다는 식이다. 현대해상에 따르면 최근 브로커 개입으로 발달지연 치료센터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가 하면 이비인후과나 성형외과, 피부과 등 발달지연 비전문의가 치료하는 비중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현대해상은 4곳의 법무법인에 법률 검토를 받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에 관련 질의를 보내기도 했다. 그 결과 ‘의료인과 의료기사 등 자격은 의료법에 준하며, 해당 의료기관에서 상근해야 한다’거나 ‘민간 자격 소지자는 의료법상 의료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회신받고 이를 상품에 적용했다.
가입자들이 주장하는 ‘실손의료보험금 미지급’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 지급률은 지난 2020년 99.4%, 2021년 99.6%, 2022년 99%로 나타났다. 올해 1~7월에도 이 비율이 99%에 달한다. 심지어 보험금 심사 기준 강화를 가입자에게 안내한 후에도 98%대의 지급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인자격증이 아닌 민간자격증을 근거로 한 모래놀이상담사나 임상미술심리상담사들도 발달지연 아동을 대상으로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행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며 발달지연 아동 치료 서비스 체계를 붕괴시키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아동 치료 권리 지켜야”
반면 발달지연 아동을 둔 부모들은 심사 기준 강화를 보험사의 횡포라고 본다. 상품 가입자들은 코로나19 이후 발달지연 아동이 늘어난 탓에 대학병원에 가면 1~2년을 대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당장 치료를 이어가지 못하는 아동에게는 발달 퇴행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치료를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설 센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연대도 형성됐다. 현대해상으로부터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 지급을 받지 못한 양육자 200여명이 모인 ‘발달지연 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다. 이 단체 대표자인 송수림 씨는 지난 10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건강보험은 존재하지 않고 유일한 국가 지원인 바우처는 맞벌이 부부 소득 기준으로는 신청조차 할 수 없다”며 “그나마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것은 실손보험뿐인데, 현대해상은 지난 5월 일방적인 알림톡으로 민간자격증 치료에 관해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뿐 아니라 의료계도 현대해상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아동병원협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 행동발달증진학회는 현대해상의 실손의료보험 지급 정지 철회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지난 8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그동안 지급하던 보험금을 갑자기 전면 이제 지급하지 않는다고 일방 통보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보험회사의 건전한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이런 사태의 근본적 원인과 실태를 엄중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이 탄원서는 금융감독원에서 기각됐다. 심의위원회 대부분 위원이 현대해상의 알림톡 내용이 보험업법상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위원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다 중단한 것이므로 약관 변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이런 점에서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양측 모두에서 제기된다. 대한아동병원협회 관계자는 “영유아 발달지연 관련 진료비와 치료비를 건강보험에 편입하고, 지역 중심 행동발달 증진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최근 관련 의원실에 제도 개선에 관한 건의 사항을 제출했다”며 “의료 행위자 자격 관련 재정립이 필요하고, 비급여 치료에 대한 요양급여 등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 아동의 재활 치료가 사각지대에서 소외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복지 정책 도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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