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지분적립형 공공주택 실험 성공할까
GH, 광교 A17에 5년 뒤 240가구 후분양 예정
초기 자금 부족한 실수요자에겐 내집마련 대안
실거주 의무·전매 제한 기간 길어 유인 효과 글쎄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이라는 새로운 공공분양 모델을 내놓으면서 내집마련 문턱을 낮출 방안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GH는 수원 광교신도시 내 A17블록(옛 법원·검찰청 부지)에 들어설 600가구 물량 중 240가구를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으로 시범 공급하겠노라 발표했다. 해당 단지는 2025년 착공해 2028년에는 후분양 일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전용 59㎡의 경우 총 분양가가 5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지분을 20~30년에 걸쳐 분할 취득하는 공공분양 모델이다. 최초 분양을 받을 때는 분양가의 10~25% 정도만 부담하고, 이후에는 20~30년에 걸쳐 4~5년마다 나머지 분양대금과 이자를 나눠 내면서 자기 지분을 적립하듯 취득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꼭 20년 또는 30년간 지분을 계속 사들일 필요는 없다.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주 의무 기간’ 5년과 ‘전매 제한 기간’ 10년을 두고, 이 기간이 지나면 자유롭게 집을 팔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GH는 이런 지분적립형 주택의 면적을 전용 60㎡ 이하로 한정하는 대신, 분양가는 원가에 최소 이윤을 더한 저렴한 가격으로 후분양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 공공분양과 달리 청약자의 소득 수준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초기 투자금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토지임대부 주택’과 비슷하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아파트로, 토지 가격만큼 분양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토지임대부와 지분적립형 주택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건물과 함께 땅을 소유할 수 있는지와 전매 제한 기간 이후 ‘개인 거래’가 가능한지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건물과 함께 땅을 소유할 수 있으며, 공공에만 집을 팔 수 있는 SH의 ‘반값 아파트’와 달리 5년 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고 10년 전매 제한 기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시세대로 팔 수 있어 시세차익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시장 가격’이 아닌 GH에서 정하는 별도 방식으로 판매 가격이 결정되며, 지분 100%가 되기 전에 판매한다면 이익을 지분만큼 GH와 나눠야 한다.
애초에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이 낯선 제도는 아니다. 이미 2020년 8·4 대책에서 처음 언급된 바 있고, 이듬해는 관련 제도도 정비를 마쳤다. 2020년 당시 SH에서도 무주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연리지홈’ 브랜드를 만들고 2028년까지 1만7000가구를 지분적립형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로 서울에 연리지홈이 공급되는 일은 없었다. 이에 따라 GH가 발표한 광교신도시 A17블록은 수도권에서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이 공급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사업 부지에 대한 시장 평가는 나쁘지 않다. 이번에 공공분양주택 시범 사업지로 발표된 광교신도시 A17블록은 당초 ‘중산층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려 한 부지였다.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방식으로 개발해 중산층에 필요한 고급 임대주택을 지어 주변 시세의 90%에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률 검토를 마친 경기도가 출자를 거절하면서 리츠 구성에 실패했고, 법령 개정(종부세 감면)이 이뤄지지 않아 추진이 어려워지면서 동력을 완전히 잃은 상황이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으로 계획이 바뀌었지만 애초에 ‘고급 임대주택’ 공급을 고려했던 부지인 만큼 입지는 뛰어나다. 국토지리정보원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화초, 사색공원과도 맞닿아 있다. 아주대병원과 원천호수도 가깝다. 인근에는 2014년 입주한 광교호반베르디움(1330가구)이 있다. 광교호반베르디움 전용 59㎡는 A타입이 지난 9월 7억7700만원에, B타입은 8억45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광교에 공급될 전용 59㎡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의 추정 분양가가 5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시세의 60%가량 가격에 내집마련이 가능한 셈이다.
이렇듯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은 무주택 서민의 분양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 주거 안정을 제공하는 한편, 자산 축적을 돕는 역할까지 제공하는 방식으로 주목받는다. GH는 정책 효과를 검토해 수도권 3기 신도시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주거 안정을 제공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수분양자의 실제 부담이 적잖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양대금과는 별개로 공공이 보유한 지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5억원짜리 주택을 20년간 지분적립형으로 분양받을 경우, 입주 당시에는 1억2500만원(25%)과 함께 공공 지분 75%에 대한 임대료를 함께 납입해야 한다.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이 장기임대주택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또 GH는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주택이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주 의무 기간 5년’ ‘전매 제한 기간 10년’을 두도록 했는데 최소 1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거주지 변경을 할 수 없다 보니 직장 이동이나 개인 사정으로 지역을 옮겨야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물론 해외 체류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공공 환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10년 후 매각을 할 때도 시장 가격이 아닌 GH가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시세차익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공공분양주택 목적이 시세차익은 아니지만, 남은 지분에 대해 저금리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입주자들이 지분적립형 주택을 얼마나 선호할지가 중요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초기 자금이 부족한 20~30대 청년 실수요자에게는 지분적립형 주택이 내집마련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젊은 세대는 직장에 따라 거주지를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전용 60㎡ 이하로 한정돼 있다 보니 향후 결혼·출산 등으로 가구원 수가 늘어날 때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이를 대체·개선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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