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과 채색으로 합체시킨 대나무

손영옥 2023. 10. 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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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일색인 화랑가에서 채색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는 한국화가 수묵화와 채색화로 나뉘어 경쟁하던 시절이다.

왜색 논란으로 국전이 수묵화 중심으로 흘러가며 채색화가 줄줄이 낙선하자 1967년엔 젊은 채색화가들이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국전 동양화부 낙선전을 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화백은 "저는 채색화다 수묵화다 구분하는 게 싫었다. 색이 없는 그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냥 코리안 페인팅(한국화)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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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스페이스 소포라’ 개관 초대전 ‘이화자 : 창연’
예순번 덧칠해서 얻은 은은한 빛
천경자·박생광에게 가르침 받아
작품 ‘초여름(한지 위에 분채, 1989)’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화자 화백.


서양화 일색인 화랑가에서 채색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중구 덕수궁 뒤 신생 갤러리 ‘스페이스 소포라’ 개관 초대전인 ‘이화자 개인전 : 창연’이다. 갤러리는 100년 만에 복원된 서양식 건축 돈덕전 바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화자(80) 화백은 1960년대 대학 시절 한국 채색화의 양대 산맥인 천경자와 박생광을 사사했고, 1980년대 채색화가 꽃피던 시절을 지나왔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중심으로 흘러가던 60년대 미대 시절부터 이야기했다.

“3월에 시작해서 일 년 내내 국전을 목표로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그러다 9월 초 국전 공모가 닥치면 조교가 실기실에 와서 한꺼번에 작품을 싣고 갔지요.”

당시는 한국화가 수묵화와 채색화로 나뉘어 경쟁하던 시절이다. 왜색 논란으로 국전이 수묵화 중심으로 흘러가며 채색화가 줄줄이 낙선하자 1967년엔 젊은 채색화가들이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국전 동양화부 낙선전을 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일본화는 돌가루를 재료로 한 석채를 쓰고 한국화는 분채를 쓴다. 석채는 돌가루라 번쩍거리고 종이에 스며들지 않는다. 하지만 분채는 한지에 스며들어 색이 진해도 순한 맛이 난다”고 왜색 논란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런 담박한 맛을 내기까지는 화가의 노동은 노역에 가깝다.

“한국 채색화는 기법이 까다롭거든요. 칠하면 종이가 물감을 빨아들이면서 금방 색깔이 없어져요. 색이 쌓이고 스며들게 하려면 예순 번씩 덧칠해야 해요.”

이 화백은 “저는 채색화다 수묵화다 구분하는 게 싫었다. 색이 없는 그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냥 코리안 페인팅(한국화)이다”고 했다. 그런 회화관이 표출된 대표작이 ‘초여름’(1989)이다. 사군자의 하나로 수묵 문인화의 대표적 소재인 대나무를 한지 위에 분채를 사용해 청신한 초록으로 그렸다. 수묵과 채색의 합체다.

부산 경성대에서 교수로 지내던 40대 시절 진주로 놀러 갔다가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을 보고 감동해서 그렸다. “이전까지 대나무는 먹으로만 그렸습니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인데 채색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나. 내가 한번 그려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까지 꽃과 나무 등 자연 풍경을 사실감 있게 그리던 작가는 90년대 이후 부산에서 본 풍어제 등에서 영감을 얻어 전통문화로 소재를 확산했다. 안료만 바르는 게 아니라 천을 붙이고 대상을 추상화하는 등 현대적인 조형 실험을 계속해 왔다. 전시에는 초기작에서 최신작까지 모두 나왔다.

글·사진=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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