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하고, 연애도 하는 노숙인입니다
[이희진 기자]
▲ 유튜브에 공개한 노숙인 다큐 중 조회수 상위 3개 영상에서 추출한 댓글 6,275개를 워드클라우드로 분석한 결과 (개인채널 영상, 숏츠 등은 제외함) |
ⓒ 이희진 |
냄새, 사지멀쩡, 게을러, 술 냄새, 의지박약, 암 덩어리, 벌레, 한심
모두 노숙인을 지칭하는 용어다. 유튜브에 공개된 노숙인 다큐 중 조회수 상위 3개 영상에서 추출한 댓글 6275개를 단어 시각화 프로그램 '워드클라우드'로 분석한 결과다.
▲ 지하철 서울역 엘리베이터 내부에 게재되었던 경고문 (현재는 제거됨) |
ⓒ 홈리스행동 |
사건 발생 약 한 달 후, KBS가 <뿌리 깊은 '편견'… 노숙인 포용, 어떻게?>라는 보도로 해당 사건을 다룬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KBS 조차, 사건 발생 직후에는 <부산역 광장서 노숙인끼리 흉기 난동…2명 사상>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지난해 1월 <홈리스행동>이 지하철 내 노숙인 혐오 조장 게시물 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대소변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란다' 등 게시물 속 신고 대상을 노숙인으로 특정한 것이 문제였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인격권 침해이며,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심화할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종이학 접고, 앵무새와 대화하는 남자
이처럼 차별과 혐오의 당연한 대상이 되어버린 노숙인. 사회적으로 규정한 노숙인과 실제 노숙인은 과연 같은 모습일까.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지난 20일 금요일 오전 9시, 대표적인 노숙인 밀집 지역인 서울역을 찾았다. 아침 기온은 13도. 꽤 쌀쌀한 날씨에 근처 마트에서 산 핫팩과 젤리를 들고 그들을 찾아다녔다. 취재진에게 먼저 다가온 건, 10년 차 노숙인 채아무개(45세, 남)씨였다. 마른 체형에 큰 눈을 가진 채 씨의 이야기를, 서울역 광장 계단에 앉아 들을 수 있었다.
시작은 가족과의 불화였다. 좋아하던 누나와의 결혼을 가족이 반대했고, 이후부터 술은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가 됐다고 했다. 18살, 군대 가기 전 일을 하다 만나 2년을 사귀었다고 했다. 누나와 나이 차이는 조금 났지만, 푸근한 모습을 보고 감싸주고 싶었단다. 가족의 반대로 파혼한 후 군대에 자원해 들어갔고, 제대 후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 손에 병원으로 보내졌다.
"퇴근하고 두 병, 매일 마셨지. 집에서 병원에 집어 넣었어. (누나하고는) 헤어지고도 계속 편지로 연락은 했지. 병원에 있을 때 누나한테 편지를 33장 썼거든 앞뒤로 빽빽하게. 시도 쓰고, 노래 가사도 붙이고 그랬는데.
난 매일매일 편지가 갈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한방에 들어간 거야. 병원 사람들이 귀찮아서, 우푯값도 들고 하니까 매일 안 보내주고 한 번에 보냈다더라고... 누나 말로는 (읽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하대. 연락이 끊긴 건 33살 때.
내가 능력이 없으니까 보내줬지. 전화나 편지만 하고 못 만나니까. 꿈에 나오더라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 채 씨가 접어준 종이학 |
ⓒ 이희진 |
노숙 생활을 한 지도 10년째. 어떻게 일과를 보내는지 물었다. 채씨는 1200원짜리 학종이 묶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심심할 때 광장에 앉아 학이나 거북이 같은 걸 접는다고 했다. 올해 추석까진 성경 필사도 하며 무료함을 달랬는데, 자는 동안 성경을 도둑맞았다며 짜증을 냈다.
"심심할 게 뭐 있어. 여기서 사람 구경도 하고 종이도 접고. 학종이 알아요? 내가 이 종이를 만날 갖고 다녀. 옛날에 이걸로 막 몇천 마리 접어서 여자한테 고백도 하고 그랬는데. 잠깐만 있어봐 학 접어줄게. 선물로 줄게. 이거 종이가 한 통에 1200원짜리야. 비싸. 비싼데 이뻐서 주는 거야."
낮마다 서울역에 날아오는 앵무새도 그에겐 좋은 친구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채씨는 "새가 언제 오려나" 중얼거렸다. 앵무새와 말 동무를 하고, 종이접기를 하며 서울역에 와서 술도 거의 끊었다고 했다. 기초수급비도 안 받고 있다고 했다.
"그냥 받기 싫어. 밥 얻어 먹을 곳이야 주변에 많고, 잘 곳은 저기 센터에서 해주는 고시원 있고. 수급비 받으면 뭐 해. 술 먹는 데 다 쓸 텐데. 술 끊으려고 일부러 안 받았지."
▲ 취재진과 대화 중인 노숙인들 |
ⓒ 이희진 |
다른 노숙인을 찾아 채씨와 서울역 공원 주변을 30분간 배회했다. 그러다 친한 동생이라는 남성 노숙인 한 명을 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안경을 쓰고, 키가 큰 남성이었다. 30대 후반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김아무개(30대, 남)씨는, 작년 12월부터 서울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원래 지방에서 일하다가) 12월에 유독 너무 추웠어요. 그래서 그냥 (서울로) 올라왔어요. 초반에는 거리에서 생활하다가 지금은 저기 센터에서 소개해 줘서, 고시원 생활 하면서 일도 하고 때 되면 급식소에서 밥 먹고 그러고 있죠."
김씨가 거리에 나오게 된 것도 가족과의 불화가 주된 이유였다. 학업, 연애문제 등으로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탓에, 중학생 때 일찍이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중국집에서 일을 하고 불 꺼진 식당 안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서울까지 올라왔단다. 가족과는 이미 오래전 연락이 끊겼다. 손때가 묻은 아날로그 줄 이어폰을 들고 다니던 김씨는, 대화 도중 울리는 연락을 받느라 몇 번이나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대부분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지인이나, 애인의 연락인 듯 보였다.
거리 생활을 더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 발로 파출소와 시청까지 찾아갔다. 덕분에 노숙인 지원 센터를 알게 됐고, 지금은 센터에서 월세를 지원해 주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가끔 나오는 바퀴벌레나 빈대에게 물려 스트레스를 받지만, 거리에서 생활하던 때보다는 낫다고 했다. 일용직 건설 현장에서 일주일에 2번에서 3번 일을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일터에서 만난 여성과 연애 중이라며 놀리는 채씨의 짓궂은 장난에, 김 씨는 부끄러운 듯 잠깐 웃었다. "네 그냥 뭐 그렇게 됐어요." (웃음)
서울역에서 노숙인 만나보니
▲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보고서(보건복지부 보도자료) |
ⓒ 보건복지부 |
노숙인을 지원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21 사업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인의 취업상담이 한 해 1306건에 달했고 초기상담이나 주거, 행정, 생활상담 등도 꾸준히 이어졌다. 노숙인을 '00 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편견은 노숙인 개인의 다양한 노숙 계기와 현재 처한 상황, 자활 의지, 주거 상황, 일자리의 유무 등을 모두 가려버리고 동일한 집단으로 만든다.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터뷰에서 "월드컵 등 국가적인 행사에서 노숙인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것처럼 과거 정부가 노숙인을 사회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편견을) 유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이 앉지 못하도록 의자 구조를 바꾸거나 역사를 개편할 때 노숙 금지 구역을 설정한 것도, 노숙인을 가급적 보이지 않게 하려는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노숙인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말도 기본적으로 틀린 전제이고 실제로 공공근로 사업 등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며 "(노숙인에 대한 일반화는) 저렴 주거 확보 정책에 실패한 국가가 정책을 보강하기보다 개인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문제의 책임을 회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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