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野 ‘쓴소리 릴레이’에도 “만찬 모시겠다”…與 “변화 시그널”
“국정운영에 대한 국회의 말씀을 잘 경청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새해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간담회 및 오찬 행사를 열어 거듭 강조한 말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윤 대통령을 향해 “불통”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날 헌정사 처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국회로 찾아와 상임위원장단과 간담회를 열어 몸을 낮추며 소통 의지를 보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야당 의원과의 소통이 적었던 윤 대통령으로선 야당 중진 의원들과의 첫 대면이기도 했다. 상임위원장은 주로 3선급 의원이 맡고, 여소야대 국회여서 여당보단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이 많기 때문이다.
이날 국회 접견실에서 열린 간담회엔 윤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윤재옥(국민의힘)·홍익표(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의석수에 따라 분배된 상임위원장은 11명이 거야(巨野) 민주당 소속이다. 대통령실에선 김대기 비서실장,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등이 자리했다.
참석자들과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간담회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우리 상임위원장들을 다 같이 뵙는 건 오늘(31일)이 처음”이라며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회의장께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김 의장은 “정부와 국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함께 운영해 갔으면 좋겠다”며 “오늘을 계기로 협치의 물꼬가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화기애애했던 공개 회담과 달리, 이어진 1시간 가량의 비공개 간담회에선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국정 전반에 대한 제언과 고언이 쏟아졌다. 대통령실이 사전에 3분 내외로 상임위 현안에 대한 제언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야당 의원들로선 작심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까닭이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그간 비서실에서 듣지 못한 내용을 오늘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의장실 보도자료와 홍익표 원내대표의 브리핑 등을 종합하면 백혜련(민주당) 정무위원장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께서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에 이전하겠다고 밝힌 뒤 여야의 이념 논쟁으로 번졌는데, 윤 대통령이 이를 직접 마무리지으라는 요구였다.
김민기(민주당) 국토교통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제를 언급하며 “대통령께서 논란의 종지부를 직접 찍어주셔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또 김교흥(민주당) 행정안전위원장은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유족과 직접 만나라”며 “참사에 대해 책임있는 사람이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책임자로 보고 탄핵까지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고언이 쏟아지는 동안 윤 대통령은 주로 경청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제언을 모두 들은 후엔 “위원장님들의 소중한 말씀을 하나도 잊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가 국정운영과 향후 정부 정책을 입안해 나가는 데 잘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또 장제원(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이재정(민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이 언급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문제와 관련해선 R&D을 삭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아낀 예산을 어디에 쓸지, 앞으로는 R&D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길게 설명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치며 “연말에 상임위원장단께 저녁을 모시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제언 순서 때 김태호(국민의힘) 외교통일위원장이 “소주 한잔하고 가슴 열고 이야기하다 보면 나라 걱정하는 건 여야가 따로 없더라”라고 말한 걸 인용하면서였다.
간담회 후 국회 사랑재에서 이어진 오찬에서도 윤 대통령은 “경제·안보 등 대외적인 위기 상황이 많이 있고, 국민 민생도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초당적으로 힘을 합쳐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할 때”라며 협치를 강조했다. 간담회와 오찬에 참석한 여권 관계자는 “오늘 윤 대통령의 엄청난 변화 시그널을 봤다”고 했고, 야권 참석자 역시 “윤 대통령이 국회와 한 발짝 가까워진 날”이라고 평가했다.
김준영ㆍ전민구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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