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과 환담때 무슨 말했나…참석자들도 놀란 '이재명 1분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시정연설 전 사전 환담 자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났다. 지금껏 행사장에서 마주치더라도 짧은 인사만을 나눴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소통한 것 자체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대선까지는 경쟁 후보였고, 지난해 8·28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에는 대통령과 제1야당 수장으로 사사건건 충돌했던 두 사람의 만남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린 이유다.
다만 두 사람의 사이에 구체적인 의제가 오가지는 못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공히 ‘민생’과 ‘현장’을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예산이나 법안을 언급하지는 않은 채 각각 1분 남짓 발언에 그쳤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협치의 계기는 마련됐으나 전면적인 협치가 이뤄지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야당 중진)는 평가도 나왔다.
붉은색 넥타이를 맨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42분 김진표 국회의장과 나란히 국회 접견실에 들어섰다. 윤 대통령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영주 국회 부의장,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거쳐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악수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눈을 바라보며 “오랜만입니다”라고 말했고, 이 대표는 말없이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푸른색 넥타이를 맨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입장 15분 전 환담장에 가장 먼저 입장해 앉아 있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여야, 정부가 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저희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은데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며 “저희들도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계속 현장을 파고들고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 방향과 예산안 설명을 오늘 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테고, 정부에서도 언제든 요청하시는 자료와 설명을 충실하게 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발언은 비공개로 전환된 차담에서 이뤄졌다. 이 대표의 키워드도 ‘민생’과 ‘현장’이었다. 이 대표는 “민생과 경제가 너무 어렵다”며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각 부처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생각으로 현장에 좀 더 천착하고 정책이나 예산에 있어서 좀 대대적인 전환을 해주시면 좋겠다”라고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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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대표의 발언에는 그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조해왔던 ▶경제기조 전환(25일) ▶이태원 추모제 참석 및 사과(27일) ▶민생 예산 편성 및 연구·개발(R&D) 예산 복원(31일) ▶남북군사합의 파기 반대(31일) 중 어느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24일간 단식을 시작하며 내걸었던 ▶대통령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천명 ▶전면적 국정쇄신·개각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발언을 1분 만에 끝냈다. 한 참석자는 “이 대표가 많은 얘기를 쏟아낼 거로 예상했는데, 의례적인 민생 언급 외엔 별다른 얘기를 안 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이어진 다른 당 대표의 발언과도 대비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민생이 어려운 만큼 예산안은 법정기한 내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야당에 요구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해달라”며 “국회를 존중해 더 이상의 대통령 거부권은 쓰지 말고, 여야 대표들과 협치와 소통의 장을 열어달라”고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언을 경청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이날 시정연설 이후에도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이 대표가 제언했고, 양자 회담이 아니라 필요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포함한 3자 회동도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확답이 없다”고 재차 대통령실의 응답을 촉구했다. 야권 관계자 역시 “이 대표가 향후 영수회담을 다시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사전 환담에 굉장히 의례적으로 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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