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갱신하며 떠오른 기억, 당신이 안전운전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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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 운전면허 적성검사 안내 통지문이다. |
ⓒ 곽규현 |
우리 가족은 자동차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주 깊은 편이다. 내 부모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운전하는 것을 걱정하시며, 가능하면 운전하지 않기를 바랐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가슴에 한 맺힌 사연이 있다.
우리 가족은 큰형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 앞에서는 일체 그날 사고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지만, 말을 안 한다고 잊히는 게 아니다. 가슴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35년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직전 연말 분위기에 들떠있던 그때 나는 청천벽력 같은 큰형님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 정신이 나간 듯 멍한상태로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정신적 충격이 엄청났다. 정신을 차리고도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일단 큰형님이 사시던 광주로 급히 내려갔다.
큰형님의 사고로 가족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동차도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 큰형님은 운전면허증도 없었고 운전할 줄도 몰랐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짐수레를 밀고 가다가 뒤에서 달려오던 일 톤 화물차에 치여 사고 현장에서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셨다.
큰형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 우리 가족은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큰형수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아 삶의 의욕을 잃고 한동안 앓아누우셨다. 당시 큰형님과 큰형수님 사이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5살인 큰딸, 3살인 작은딸 그렇게 어린 삼 남매가 있었다. 큰형수님을 위로하고 설득하여 작은형님과 내가 살고 있던 부산으로 모시고 왔다.
이후에 큰형님 없이 어린 조카들 셋을 데리고 살아온 큰형수님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눈물겹다. 우리 가족이 큰형수님을 가까이서 신경쓴다고 썼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싶다. 당시에는 정부에서 자녀를 두 명 이내로 산아제한을 하던 시절이라 자녀가 세 명이던 큰형수님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어려운 가정형편에 왜 아이들까지 세 명이나 낳아서 저 고생일까'라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형수님도 그렇지만 조카들도 그렇다. 남편 없이 아빠 없이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저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고 꿋꿋하게 헤쳐 나온 큰형수님과 조카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심초사하시던 부모님
큰형님의 사고 이후에 나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큰형님은 나보다 나이가 열다섯 살이나 많아 어릴 때는 큰형이라기보다는 언제나 든든한 젊은 아빠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부모님을 대신하여 큰형님의 손을 잡고 입학했던 기억이 난다. 큰형님은 맏이로서 책임감이 강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형제들도 수시로 신경써 주었다.
그런 집안의 기둥이던 큰형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철없는 막내로만 지내던 내가 여러 사정상 철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큰형님에게 의지하던 나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 집안의 문제를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하는 삶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집안의 맏이를 잃은 부모님의 상실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큰형님이 돌아가신 이후, 부모님은 어린 손자녀들을 데리고 살 맏며느리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남은 자식들도 행여나 교통사고로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늘 노심초사하셨다. 부모님 제일의 당부는 자나깨나 '차조심'이었다. 자식들이 승용차를 사거나 운전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남아있는 우리 형제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자동차나 운전에 관해서는 늘 조심스러웠다.
작은형님은 운전면허증이 있으나 운전을 하지 않는다. 누나는 운전면허증 자체가 없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고도 10년 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장롱면허'로 있었다. 생활의 불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사고 운전을 하지만,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최대한 방어 운전을 한다. 부모님은 임종하실 때까지 큰형님의 교통사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걱정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걱정을 하고 계실 것만 같다.
▲ 신호대기 중인 차량 옆으로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 곽규현 |
우리 가족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운전자는 최대한 안전 운전해야 한다. 아울러 교통 당국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 참상을 알리고, 유족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피폐해지는지도 알려서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일단 인명 사고가 나면 사고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의 삶까지 고통 속에 빠진다는 것을, 모든 운전자들이 뼈저리게 가슴에 새기길. 그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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