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 갈 때까지만 살고 싶다… 신약 절실한 유방암 환자"

신은진 기자 2023. 10.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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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 묻다]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

5년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알려진 유방암은 '걱정 없는 암', '착한 암'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생존율이 높은 건 조기 유방암에 한정된다. 전신 전이가 있는 유방암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4%로 크게 감소한다. 30~50대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소원이 '아이가 학교 갈 때까지만이라도 살아 있는 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최근 전이성 유방암에도 획기적인 신약이 등장했으나,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환경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환자도 의사도 만족스럽지 못한 치료가 이어지고 있다. 어찌 된 일인 걸까?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를 만나 전이성 유방암의 현실과 최신 치료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신지호 기자
-전이성 유방암 미충족 수요가 여전히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유방암은 전체 암 중 치료 성적이 상당히 좋고, 치료 약제도 가장 많은 암종이다. 그럼에도 일부 환자들에게는 재발, 전이되며 사망에 이르기에 여전히 임상적 미충족 수요가 있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약 15%가 HER2 양성 유방암에 속하는데, HER2 양성 유방암은 재발과 전이를 잘 일으키고 진행 속도가 빨라 예후가 좋지 않다. 우리나라는 워낙 검진이 잘되어 조기암 단계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기에 발견했더라도 이 중 20~30%는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다. 그런데 현재 치료법으로는 환자가 5년 안에 사망하기에 새로운 약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다. 즉, 전체 유방암 환자의 약 3% 정도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이라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전체 유방암 환자 수가 2만 명이 넘으니 적지 않은 환자가 미충족 수요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 미충족 수요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전이성 유방암은 완치가 어려운 병이다. 암이 온몸에 다 퍼져 있는 것이다. 평균 5년을 생존하는 게 쉽지 않다. 생존하는 동안도 한 번만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치료제 내성이 생기면 약을 계속 바꿔야 한다. 내성이 생긴 다음에 사용할 수 있는 약이 없어서 손을 놔야 하는 상황도 있다.

유방암 환자가 가장 많은 환자는 50대다. 가정과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50대에 가정,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이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미충족 수요로 인한 그 영향력이 심각한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어떻게 치료를 하나?
1차 치료로 도세탁셀+트라스투주맙+퍼투주맙을 함께 사용하는 3제 요법을 1년 반 정도 진행한다. 이후 내성이 생기면 트라스투주맙 엠탄신(T-DM1)이라는 치료제를 사용하는데, 평균적으로 6~10개월 이내에 암이 다시 진행된다. 이외에도 카페시타빈, 라파티닙 등이 있는데 이 약도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기고, 그 이후엔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최신 신약인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제품명 엔허투)은 국내 허가를 받긴 했으나 아직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실제 환자 사용엔 한계가 있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기존 치료법과 효과가 얼마나 차이가 나나?
이 약은 차수가 높은, 치료 후반기에 있는 환자들에서 임상 데이터가 매우 좋아서 2상 연구만으로도 승인을 받았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의 2차 이상 치료 결과를 확인한 'DESTINY-Breast03' 연구를 보면, 기존 표준 치료인 트라스투주맙 엠탄신(T-DM1)에서 무진행 생존기간이 6.8개월인데,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28.8개월이 나왔다. 원래 가장 좋은 약은 1차 치료에 쓴다. 1차 치료의 무진행 생존기간이 18개월인데,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그다음 차수인 2차 치료임에도 무진행 생존기간이 더 길게 나타난 거다. 20년 전 ASCO에서 트라스투주맙의 보조요법으로 기립박수가 나온 적이 있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그 이후 20년 만에 HER2 양성 유방암에서 나온 획기적인 약이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기존 치료제보다 무진행 생존기간이 4배 이상 길다./신지호 기자​​
-전이성 유방암에서 흔한 뇌 전이 등에도 효과가 있나?
뇌전이에도 특히 효과가 있다. 최근 진행된 2023년 유럽종양학회(ESMO 2023)에서 뇌전이와 관련한 굉장히 좋은 데이터가 나왔다. 후향적으로 뇌전이가 있는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를 분석한 연구 결과이다.

-효과를 환자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인가?
그렇다. DESTINY-Breat03 연구를 보면,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무진행 생존기간도 늘렸지만, 전체 생존기간도 늘렸다. 전체 생존기간이 늘었다는 건 환자가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향했다는 걸 의미한다. 생명을 살렸단 점에서 실제 환자에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초기 임상에 들어온 50대 환자는 4차 치료에서 엔허투 임상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6년째 생존해 일상생활을 하며 임상에 참여하고 있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대부분 5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획기적인 결과다.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은 젋다보니 대부분 한참 아이를 키우는 나이대이다. 아이가 지금 초등학생인데 대학교에 갈 때까지만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신약을 사용한다면 전체 생존기간이 연장되기에 이런 환자들도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효과만큼 부작용이 심하진 않나?
메스꺼움을 느끼거나 10명 중 1명에는 폐렴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암 때문에 극심한 통증, 증상을 겪거나 사망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더라도 치료를 하면 삶의 질도 높아지고 오래 살 수 있다. 효과와 부작용을 두고 저울질해보자면, 써야만 하는 약이다.

-현재 이 약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 부담은 어느 정도인가?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체중에 따라 사용량이 달라지는데, 제약사에서 제공하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55kg 여성 환자 기준 한 사이클 당 약 6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그러다보니 치료효과가 매우 좋은 걸 확인하고도 비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시작부터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한종양내과학회와 대한항암요법연구회를 통해 ‘전이성 유방암의 생존율 향상을 위한 신약 접근성 강화 방안’에 대해 정책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전문가들도 20년간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약으로, 환자를 위해 접근성 강화가 필요하다.

-고가의 약에 보험을 적용하는 일은 사회적 부담도 생각해야 하는데?
임상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통계학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계학적 의미를 넘어서서 임상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 다르다. 무진행 생존기간을 1~2개월 연장하는 등 통계학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기존 치료보다 22개월이나 무진행 생존기간을 연장했다. 이는 치료비용이 비싸도 임상적 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급여를 통해 얻는 사회경제적 이득이 훨씬 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더 오래 가정생활을 하고, 일도 한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사망으로 인한 지난 10년간 사회적 생산 손실 비용이 약 1조원이 넘는다. 앞선 연구를 보면,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 사용을 통해 연장된 무진행 생존기간이 불러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이 총 2614억 원이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은 임상적 의미가 있는 약이다. 순서를 기다리지 말고 다른 항암제보다 더 먼저 논의가 필요한 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전이성 유방암은​ 조기 유방암과 달리 사망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빠르게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지호 기자
-10월은 유방암의 달이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조기 유방암에 사회적인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조기 유방암 환자의 약 80%는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렇지만 전이성 유방암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병임에도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환자 수가 적고, 죽음이라는 것을 입에 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음지에서 치료를 받는 느낌이 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적절한 치료를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보험급여 등 시스템이 부족해 경제적인 문제로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 약이 아무리 좋아도 치료가 너무 늦어지면 진료 현장에선 안타까운 일이 늘어난다. 너무 늦지 않게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

환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외래에서 치료받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 매우 많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 외에도 환자의 삶을 바꾸는 혁신적인 약이 많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잘 치료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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