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자리 있어도 서서 간다"…'빈대 공포'에 전국이 떤다

장서윤 2023. 10. 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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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 강동구로 출근하는 이모(26)씨는 지난 30일부터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도 서서 출근하고 있다. 빈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천으로 된 지하철 좌석에도 빈대가 서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에 유럽 여행할 때 빈대에 물렸었는데 모기에 물린 것보다 10배 정도 가려웠다. 이후 한 달 동안 빈대가 있을까봐 불을 끄고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며 “한국은 ‘빈대 청정국’인 줄 알았는데 2023년 한국에도 빈대가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사냐”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 못 살겠다”…커지는 근심


‘베드버그(bedbug)’로도 알려진 빈대가 지난달 대구 계명대 기숙사, 지난 13일 인천 서구 사우나에 이어 최근 서울 곳곳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공포가 퍼지고 있다. 김모(27)씨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데 혹시 밖에서 빈대를 옮겨왔을까봐 나갔다 들어오면 무조건 빨래부터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제 지하철 안 타겠다”, “천 좌석에 앉기 싫어서 영화 예매 취소했다”, “대학교 기숙사도 못 살겠다. 비대면 수업으로 바꾸자”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중앙일보가 복수의 민간 방역 업체의 작업 내역을 확인해보니, 이달에만 서울 25개 자치구 중 18개 구에서 빈대 출현이 확인됐다. 강남구, 강북구, 강서구, 관악구, 광진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동대문구, 동작구, 서초구, 성북구, 양천구, 영등포구, 용산구, 은평구, 종로구, 중구다. 한 방역 업체 관계자는 “특히 용산구는 거의 초토화 수준”이라며 “기숙사, 찜질방은 물론 한 식당에서도 빈대가 발견돼 지금 아예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빈대가 주로 나타나는 장소는 기숙사, 고시원, 모텔, 사우나 등이다.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보건소에는 고시원 이불과 장판, 옷가지 등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보건소 직원들이 현장에 가 보니, 이미 빈대가 확산돼 4개 방에서 빈대가 발견됐다. 민간 방역 업체 ‘원스톱방역’이 제공한 사진·영상을 보면 빈대는 침대 매트리스, 소파뿐 아니라 벽지 내부, 벽면 콘센트 안쪽, 심지어는 천장 화재 감지기 속에서도 발견됐다.

벽지 속에 숨어있는 빈대. 방역업체 '원스톱방역' 제공
벽면 콘센트를 뜯어내자 안쪽에서 빈대 및 탈피각, 배설물이 발견됐다. 방역업체 '원스톱방역' 제공
천장 화재감지기 속 빈대. 방역업체 '원스톱방역' 제공

아직 국내 지하철에 빈대가 출현했다는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직물 소재의 의자는 고온 스팀청소를 하는 등 주기적으로 방역하고 있고, 오는 2일부터 외부 방역업체를 통해 빈대 서식 유무를 진단할 것”이라며 “순차적으로 새로 들어오는 전동차에는 기존의 직물 소재 의자대신 오염에 강한 복합 PC 소재로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빈대는 감염병을 매개하지는 않지만, 사람 피를 빨아먹으며 수면을 방해하고 가려움증, 2차 피부 감염증 등을 유발하는 해충이다. 을지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양영철 교수는 “모기는 많아야 서너 마리가 흡혈하지만, 빈대는 30~50마리가 일시에 흡혈하기 때문에 여러 군데가 한 번에 물려 굉장히 가렵다. 반복적으로 흡혈을 당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빈대는 모두 해외에서 유입된 개체”라며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해외 여행객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경고했다.

빈대는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웬만한 살충제로는 박멸이 어려워 공포가 심화되고 있다. 흡혈 곤충 빈대는 한 번 흡혈하면 일주일 동안 혈액을 소화하며 10~15개의 알을 산란하고, 일생 동안 200~250개의 알을 산란한다. 게다가 실내 섭씨 20도 이상의 온도 조건이면 먹이 없이도 약 120일 정도를 생존할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한 방역 업체는 “개인이 일반 약제를 사서 침구류에 뿌린다고 없어지는 빈대가 아니다”라며 “업체가 1차로 방역을 해도 9~10일이 지나면 알이 부화하기 때문에 2차는 기본, 심한 경우 3차 작업을 통해 박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보자 A씨가 한 숙박업소에 머물렀다가 빈대에 잔뜩 물렸다며 올린 모습.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정부도 31일 질병관리청, 보건복지부, 교육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방제 방안 등 대책을 논의했다. 질병관리청은 “빈대는 질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아니라서 역학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다음 달 1일부터 공항 출국장, 해외감염병 신고센터에서 프랑스, 영국 등 빈대 발생 국가 출입국자와 화물 수입기업을 대상으로 해충 예방수칙을 안내하기로 했다.

빈대 방제는 개인이 신경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에 따르면 빈대를 예방하기 위해선 숙박업소 방문 즉시, 빈대가 숨어 있을 만한 침대 매트리스, 머리판, 카펫, 침구류, 가구 등 틈새를 확인하고, 방바닥 또는 침대에는 되도록 짐 보관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만약 빈대를 발견했다면 스팀 고열, 진공청소기, 오염된 직물의 건조기 소독 등 물리적 방제와 살충제(피레스로이드계) 처리 등 화학적 방제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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