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시대서 살아남아라…정유업계, 바이오연료 사업 속도
정유사, 글로벌 탈탄소 기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새 성장동력 필요
전동화 어려운 바이오 항공유, 최대 공략 시장될 것으로 전망
탈탄소 시대를 맞아 기존 사업만으론 생존이 어려워진 정유업계가 ‘바이오 연료’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했다. 특히 바이오 연료 중 가장 높은 수요가 예상되는 바이오 항공유를 중심으로 시장을 본격 공략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에쓰오일·SK에너지 등 국내 정유사들은 바이오연료 사업 추진을 위한 기반 마련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바이오 연료는 바이오매스에서 직·간접적으로 얻는 연료를 말한다. 바이오매스는 화학적 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식·동물 등 생물체의 부산물에서 나온다. 바이오 연료는 대표적으로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 디젤, 바이오 부탄올, 바이오 중유가 있다.
바이오 연료는 생물체 자원을 활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기존 연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정도 줄일 수 있으며 일부 바이오연료는 생산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정유사들이 바이오 연료 사업에 나서는 것은 단순 새 수익 창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폐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생존전략이다. 정유 업계에서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정유사업 외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필수적이다. 환경 규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패널티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거나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또 대외환경에 따라 수요의 변동성이 큰 정유사업 외 안정적인 새 수익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바이오 연료는 정유사들이 기존 공장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투자 비용 절감과 효율적 운영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환경 규제 대응 목적만이 아니라 잠재 성장성이 큰 시장으로서도 주목된다. 바이오 연료는 전동화하기 어려운 운송수단의 연료로서 부상하고 있다. 수송부문에서 탄소를 저감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배터리를 이용한 전동화다. 하지만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45%를 차지하는 장거리 운송수단인 항공, 선박, 대형트럭 등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가 필요해 전동화가 어렵다.
특히 바이오 항공유의 경우, 항공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데 항공기는 배터리로 대체 불가능해서 최대 공략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바이오 항공유는 비싼 가격 탓에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주요 국가들이 항공유에서 바이오 연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그 비중을 늘려가고 있어 시장 규모는 확대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는 2025년부터 2% 이상 섞는 것을 의무화했으며, 2050년 70%로 점차 혼합 비율을 높일 예정이다. 미국 역시 SAF 사용에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등 SAF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바이오 항공유는 2020년엔 전체 항공유 중 약 0.01%를 차지했지만 2070년에는 35%까지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를 바탕으로 정유사들은 바이오 연료 시장에 연이어 출사표들을 던지고 있다.
국내 정유사 중 바이오 연료 사업에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HD현대오일뱅크다. 현재 개화하지 않은 시장 상황에 경쟁사들은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HD현대오일뱅크는 3단계 바이오 사업 로드맵을 구축하며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로드맵에 따라 충남 대산공장 내에 롯데제과로부터 공급받는 폐식용유 기반의 바이오디젤 제조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하반기 완공 예정인 바이오디젤 공장에 이어 수첨 바이오디젤 공장 건설, 해외 바이오 연료유 제조사업 진출 등을 계획 중이며, 2025년 이후에는 연산 50만t 내외의 바이오 항공유 제조공장도 완공할 예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코린도그룹, LX인터내셔널과 친환경 바이오 원료 구매계약을 체결하며 안정적 공급망도 확보하고 있다.
GS칼텍스는 다른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S칼텍스는 바이오 사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대한항공과 국내 최초 바이오 항공유 실증을 진행하고 있으며 HMM과는 바이오선박유 사업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는 손잡고 인도네시아에 정제시설을 지을 계획이며 공장은 내년 초 공사를 시작해 2025년 2분기 가동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LG화학과 화이트 바이오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실증 플랜트를 착공하기도 했다.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도 바이오연료 사업 진출를 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바이오 원료를 시존 석유 정제 공정에서 처리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상태다. 에쓰오일은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기존 정유 공장의 바이오 원료를 투입해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하는 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바이오 연료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시장 진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인 SK에너지는 원료 공급망 구축부터 하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국내와 중국의 바이오 원료 생산 업체에 지분 투자해 바이오 항공유 원료를 확보에 나섰다. SK에너지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확보한 원료로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바이오 연료 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이유는 사실상 바이오 항공유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라며 “정유사들은 바이오 연료 사업 확대를 위해 여러 준비와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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