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빌라왕 이름 대면 10분 만에 대출" 은행 급행특혜 의혹
수원지역 은행권 일부가 ‘수원 빌라왕’ 정모(59)씨와 거래하는 임차인들에게 전세자금 대출 패스트트랙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담보가 되는 각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이 수십억원에 달해 일반 은행 창구에선 대출을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지만 정씨와 은행 관계자들의 특수관계가 작동해 대출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IT 회사에 다니는 양모(29)씨는 지난해 9월 경기도 이천에서 직장을 옮기며 수원 팔달구 인계동에 있 정씨 아들(29) 명의의 오피스텔 5층(28.35㎡) 1.5룸으로 이사했다. 전세 보증금 1억2000만원 중에 9600만원을 A은행 수원중앙지점에서 주택도시기금대출(가계용)로 마련했다.
전세 계약을 하고 나흘 뒤인 지난해 8월17일 양씨는 잔금 납부를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자 은행을 찾았는데, 창구 직원에게 근저당(서수원새마을금고 39억2400만원) 과다를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양씨는 “내 신용에 문제가 없어 당연히 전세자금 대출이 될 줄 알았는데, 근저당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중개업소 팀장에게 대출이 안 된다고 알렸다”며 “‘신OO 부지점장을 찾아 정XX 건물로 왔다’고 하면 된다고 해서 2층에 올라가 창구 직원에게 말했더니 10분 만에 대출이 됐다”고 말했다.
순탄치 않은 전세 대출이었지만, 급히 거처를 구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양씨에게 전세사기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신OO 부지점장’은 은인이었다. 양씨는 “당시 부지점장이 출장 중이라 자리에 없어 다시 대출 계약을 거절한 창구 직원 앞으로 안내를 받아 갔는데, 방금 전 불가하다는 태도는 사라지고, 바로 대출거래약정서를 내밀었다”고 했다.
수원화성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원회는 양씨 사례와 유사하게 ‘정XX 사장님 소개로 왔다’는 말 한마디에 불가 통보를 받았던 대출이 가능해졌다는 제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신모 부지점장을 찾아가라’는 중개업소 안내를 받고 대출계약을 한 임차인도 10명 내외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씨가 건물관리 법인 3곳의 사무실을 둔 7층짜리 인계동 도시형생활주택 임차인 한모(36)씨는 “B은행과 급여 통장 계좌가 있는 A은행에선 근저당(신한은행 채권최고액 12억원)이 많아 대출이 안 된다고 했는데, 부동산에서 C은행 대출상담사를 정씨 사무실로 부르더니 일사천리로 1억원 대출을 해줬다”며 “대출상담사도 ‘정 사장님을 잘 안다’며 서로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고 기억했다.
이에 대해 A은행은 임대인이 누구인지, 대출 상담 담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신모 부지점장이) 정씨가 건물도 있고 가게도 여러 개 하는 재력가인 줄만 알았을 뿐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며 “임대인의 사무실이 지점 인근에 있어서 ‘임차인들이 대출 받으러 오면 잘 상담해달라’ 수준의 몇 차례 소통은 있었다고 한다. 안 되는 대출을 억지로 만들어서 한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경기도 고문변호사는 “임대인 일가의 전세 사기 범죄 혐의가 인정되고, 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 금융기관 직원들이 공모했다는 혐의가 입증되면 이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사용자인 금융기관에도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생길 것”이라며 “대출을 손쉽게 해줄테니 리베이트를 요구했다거나 하는 유착 관계가 혐의 입증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대책위가 집계한 정씨 일가의 개인·법인 소유 건물은 총 56개 동, 976개 세대로 예상 피해액은 1300억원 규모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이날 낮 12시까지 정씨 일가 사건으로 접수한 고소장은 345명에 피해액 509억원이다.
지난 30일 경찰의 2차 소환조사를 받은 정씨 일가는 사기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추가 소환조사를 거쳐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임대인 4명과 부동산 중개 관련인 22명 등 피의자들의 사기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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