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려있는 원룸촌 공동현관, 집주인의 황당한 변명
[김예진 기자]
"쿵쿵쿵, 배달 왔어요!"
혼자 사는 20대 여성의 집 앞에서 배달 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분명 배달 요청 사항에 "집 앞에 놔두고 가주세요"라고 썼는데 말이다. 이전에도 문 앞에 음식을 놓고 가달라고 요청 사항에 남겼는데 문을 두드리고 "계세요? 배달 왔어요", "음식인데 어떻게 놓고 가요?"라고 말하는 배달 기사와 20분간 실랑이를 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할 때, 바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다.
낯선 남성이 현관문을 쇠로 긁은 날 신청한 '안심 홈세트'
노원구에서 자취한 지 1년 된 대학생 이아무개(22)씨는 어느 날 오전, 원룸촌 복도에서 모르는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복도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서 현관문으로 가보니까, 제 집 문을 열쇠 같은 쇠로 긁으면서 통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숨죽이고 있었어요."
▲ 노원구에서 진행 중인 <여성청년 안전한 내집만들기> 홍보 포스터이다. |
ⓒ 노원구청 |
안심 홈세트에는 스마트 초인종이 포함돼있다. 밖에 누가 왔는지 스마트폰과 연동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씨는 "그동안에는 문밖에 있는 사람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는데, 스마트 초인종을 사용한 후로는 문을 열기 전에 상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불안을 줄여준다"라고 말했다.
▲ 노원구 한 원룸 공동현관문 잠금장치가 에러난 모습이다. |
ⓒ 김예진 |
"그런데 스마트 초인종으로 보는 낯선 사람도 내 현관문 바로 '뒤'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스마트 초인종으로 문밖을 들여다볼 수는 있어도, 문 안에서 낯선 이를 불특정한 시간에 마주한다는 건 긴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공동현관이 낯선 이를 1차로 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원룸촌 일대 공동현관은 대부분 '열려있는 문'이다. 이씨의 빌라 공동현관은 고장나있었다. 입주할 때부터 잠기지도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 부동산에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자꾸 풀고 다닌다고 어차피 있어도 소용없다고 하더라고요."
▲ 노원구 한 원룸 공동현관문 잠금장치 위에 네 자리 숫자가 적혀 있는 모습이다. |
ⓒ 김예진 |
자취한 지 2년이 되어간다는 이서연(24)씨는 "범죄 예방을 위해 공동현관 잠금장치가 있는 집을 골랐는데 비밀번호가 노출돼 있으니 불안하다"고 했다. 관리인에게 비밀번호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주변 집들도 다 안 바꿔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재차 전화했을 때는 "바꾸려면 업체를 불러야 해서 어렵다"고 전해왔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배달원이나 택배기사의 편의를 위해 적어둔 것인데, 이처럼 관리가 허술하다 보니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같은 '무방비'는 범죄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여성 1인 가구의 안전 현황과 정책 대응 방향(2022)'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 취약 범죄는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현관이 활짝 열려있는 이상, 1인 가구 여성들은 '안심 홈세트'가 있어도 '안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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