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대학생이 필름카메라에 빠진 이유, 이겁니다

이산 2023. 10. 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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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떨어지고 현상 과정도 복잡하지만 반대로 그게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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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기자]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레트로는 이제 한때의 유행을 넘어 우리의 생활 전반에 자리 잡으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가 가장 핫하지만, 필름 카메라도 특유의 '필름 감성' 덕에 여전히 인기 있는 레트로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한 커플 유튜버의 빈티지 웨딩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필름 카메라가 또다시 인기를 얻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취미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는 스무 살 대학생이다. 어릴 때조차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인 내가 아날로그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만난 필름 카메라, 복잡하고 흥미로운 세계 

내 첫 필름 카메라는 일회용인 코닥 데이라이트였다. 고2 때 우연히 필름 사진을 보고 나도 필름 감성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장수도 적고 비싸서 아껴가며 열심히 찍었지만, 현상하고 보니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아 필름 카메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식었다.
 
 선물받은 코닥 ULTRA F9 카메라
ⓒ 이산
그런데 1년 후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필름 사진을 다시 발견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나중에 보면 내가 이 사진을 언제 찍었나 싶은 경우가 많은데, 필름 사진을 볼 때는 각각의 사진을 찍었던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때를 기점으로 다시 흥미가 생겨서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편리하긴 하지만, 필름을 다 쓰면 본체는 버려야 해서 아깝고 한편 자원 낭비 같아서 다회용 카메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내 생일이라 친구가 코닥 ULTRA F9을 선물해 줬다. 토이 카메라라 조작이 간단해 나 같은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이었는데, 바라만 봐도 흐뭇해질 정도로 마음에 든다.
    
다음은 필름 선택이다. 필름마다 색감과 화질이 달라서 카메라만큼이나 필름 선택도 중요하다. 하지만 컬러 필름을 구매하려고 검색했는데 흑백 필름만 판매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필름이 전부 Color negative film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컬러 네거티브(Color negative)는 색 유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필름을 현상했을 때 필름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밝은 부분일수록 실제로는 어둡고, 어두운 부분일수록 실제로는 밝게 반전되어 나타난다는 의미였다. 필름에는 빛에 감광성을 가지는 할로겐화 은이 포함되어 있는데, 빛을 받은 부분일수록 반응이 일어나 은 입자가 모여서 어두워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흑백의 늪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필름에 적힌 100, 200, 400이라는 알 수 없는 숫자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또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이 숫자들은 ISO로 표기하며, 감도를 의미하는 숫자였다. 감도가 높을수록 적은 빛으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어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해상도가 떨어지고 노이즈가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감도가 낮을수록 빛이 많은 야외에서 촬영하기 적합하고, 해상도가 높아진다. 나는 야외와 실내 촬영을 겸하고 싶어서 ISO400 필름을 선택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코닥 울트라맥스 400-36
ⓒ 이산
 
이러한 기술적 용어들이 진입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점이 필름 카메라의 매력 요소라고 느꼈다. 나는 평소에 내가 사용하는 물건에 쓰인 과학 원리를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필름 카메라에는 생소한 아날로그 기술들이 사용되어서 더 흥미로웠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알려진 정보 자체도 많지 않고 설명을 봐도 모르는 용어들이 많아서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원리를 하나하나 이해해 나갈 때마다 뿌듯하고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급격히 높아진 필름 값,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필름 카메라가 유행이라 하더라도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일회성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꾸준히 사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필름 한 롤의 가격은 1만 5천 원이 넘는다. 예전에는 2~3천 원이었다지만 점점 필름 생산이 줄어들면서 품귀 현상이 일어나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인당 구매 제한이 있을 정도였다. 돈 없는 대학생에겐 부담되는 가격이라 이번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는 가족들의 물음에 나는 다급하게 "필름! 필름 사줘!!"라고 외치기도 했다.
  
 필름과 카메라로 채워진 서랍장
ⓒ 이산
 
또 필름 사진은 찍었다고 다가 아니다.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현상을 해야 한다.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빛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필름에 보이지 않는 잠상을 남기는데, 이를 우리가 보기 위해서는 필름을 현상액에 담그고 스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개인이 하기 어려워서 업체에 맡겨야 하는데, 필름 소비가 줄어든 만큼 현상 업체도 찾기 힘들어져서 필름을 택배로 업체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현상을 맡기는 것도 번거로운데 현상비에 배송비까지 포함하면 사진 36장당 최소 2만 원은 드는 셈이다.

휴대폰 카메라는 무제한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필름 카메라는 장수도 제한되어 있는데다 가격도 비싸서 마음껏 찍기 어려우니, 아무리 유행이라도 가성비가 떨어진다. 또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필름은 끝까지 다 쓰고 현상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필름 카메라를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마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만 

역설적인 말이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요새 유행하는 디지털카메라 대신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름이 비싸기에 한 장 한 장 소중히,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을 찍는다. 이렇게 찍는 사진은 찍을 때 휴대폰 사진에 비해 더 많은 감각을 사용하게 한다. 레버를 감는 촉감,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 더해 사진을 찍는 순간의 분위기와 냄새에도 집중하게 만든다. 다양한 감각을 집중해 찍은 사진은 이후에 볼 때 소중했던 그 순간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필름을 갈아 끼우는 건 번거로우면서도 동시에 내가 마치 1980년대의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다 쓴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택배를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은 고대하던 여행을 앞두고 두근거릴 때 같다. 내가 담은 순간들이 필름에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상상하며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메일함을 열어보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사진들이 도착해 있다.
  
▲ 친구 앵글이 이상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좋은 사진
ⓒ 이산
 
상상한 만큼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결과물인 사진보다도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담고 기다리는 과정이 내게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잘 나오면 잘 나오는 대로, 못 나오면 못 나오는 대로 나에겐 의미 있는 사진이다.

남보다도 나를 위한, 내가 기쁜 사진 찍기

요즘 '인스타를 위한 삶'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남에게 보여지는 삶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게 된다. 나도 한창 인스타를 위한 사진을 찍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스타 속 사진은 나를 위한 사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내가 찍은 필름 사진은 진정 나를 위한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담겨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며, 내가 좋아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가득 담겨있어 볼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꼭 필름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나의 사진이 날 위한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나'를 담은 사진을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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