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尹 "문 정부 비교 다 빼라"…시정연설문 초안 뜯어고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읽어내려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문은 평소 윤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는 결이 달랐다. 지난 정부에 대한 언급이나 비판이 빠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대통령실이 처음부터 이같은 연설문을 준비했던 건 아니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 참모들이 준비한 초안에는 문재인 정부의 방만 재정과 가계부채 방치, 어려움을 겪은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 등이 담겼었다. 그러면서 현 정부 예산안의 차별성과 불가피성, 외교 성과를 부각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하지만 초안을 본 윤 대통령이 "지난 정부에 대한 언급은 싹 드러내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초안부터 직접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윤 대통령의 연설문엔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서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되었다”고 비판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정부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시장 중심으로의 경제 체질 개선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정책을 펼쳐왔다”며 ‘정부의 시간’을 과거 정부로 확장하지 않았다. 재정 정책과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 재정”이라며 ‘우리 정부’에 중점을 뒀다.
전날 국무회의 공개발언에서 “과거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하여 갈등만 초래했다”고 비판했던 것과 달리, 이날 국회에선 “연금개혁·노동개혁·교육개혁을 위해 의원님들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겠다”며 낮은 자세로 협조를 요청했다. 시정연설문엔 “부탁드립니다”“감사드립니다”와 같은 표현도 반복해 등장했다. 이 역시 초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연설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약자복지와 청년들에 대한 내용도 대폭 추가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낮은 자세로 의회를 존중하고 여야가 협력해야 국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의회주의자로서 윤 대통령의 모습을 연설문에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추경 시정연설에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저는 가지고 있다”고 밝혔었다.
대통령실은 시정연설을 통해 국회와 대화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시정연설 뒤 윤 대통령과 국회 상임위원장들간의 오찬 회동도 열렸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인데, 이 역시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국회 구성원들과 언제든지 대화할 생각이 있다”고 재차 소통의지를 강조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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